내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일하는 자를 힘들게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요15:21)
바울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의 의미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라고 했다. 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두고서는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2-4)고 했다. 바울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에 해당하는 존재로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고 했다. 즉 그리스도는 사랑의 화신, 사랑의 아바타인 것이다.
예수의 생애 그 존재 의의가 저러한 줄 안다면 우리 또한 그분처럼 그렇게 살기를 소망하고 소망을 이루는 데 드는 큰 수고조차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감당해야 할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거나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고 한 바울의 말을 기억하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입에 발린 말로 떠받들기만 해서는 될 일이 아니며 당신들을 모두 내 안에 모셔 자신의 삶을 통해 그 은혜로운 본색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대에도 혹독한 비난을 당하셨다. 예수께서 당신이 하나님과 하나된 자로서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하나님이므로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거늘 누구를 보이라 하느냐”(요14:9)고 말씀하신 순간 참람하다느니 나사렛 이단이라느니 하며 온갖 욕설과 핍박이 쏟아졌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아시고 감내하신 예수께서는 당신처럼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당신의 뜻을 좇아 믿는 자들, 바울처럼 “나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갈2:20 참조)고 말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할 수모와 고난을 예견하셨다.
바울 자신도 당대에 수많은 오해와 질시를 받은 것이 분명한데,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στιγμα; 스티그마, 표시, (예수님께) 소유권이 있는 것을 인전하기 위해 소나 말에게 화인을 찍는 것처럼 그러함]을 가졌노라”(갈6:17)고 하며 태도를 분명히 했다.
바람직한 신앙을 품고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일이 드문 것은 아니다. 애써 길을 닦아놨더니 도적이 먼저 오고, 물에 빠진 자 구해주었더니 없는 보따리까지 챙겨줘야 하는 것이 세상이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세상의 상식’이 상식이 아니라 ‘대중의 힘’이 상식인 것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래도 살아야 한다면 ‘신앙의 상식’을 바탕으로 성실히 제 갈길을 찾아야 할 밖에 도리가 없다. 그 길 끝에 예수께서 팔 벌리고 우리를 기다리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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