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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야기

내가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요16) - 박승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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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16:5-11)

보혜사는 어떤 분일까? 그 정체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보혜사, 진리의 영, 내념의 속사람(행20:32, 마10:18-20, 롬7:22-8:2, 고후3:2-3, 갈2:20, 빌1:21, 골1:29, 계3:20을 참조]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6-17)는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우리가 육체를 긍휼의 도구로 선용할 수 있게 하려고 파송되는 성령, 돕는 배필(신랑)이다. 그리고 이 보혜사, 진리의 영은 예수 당신이 떠나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는 것, 말하자면(아버지와 함께한) 내가 떠나야(육체의 죽음) 그가 우리에게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말씀은 다른 복음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원문으로는 자녀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돕는 배필, 예수 그리스도)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는 금식할 것이니라”(마9:15)는 말씀을 보자. 예수 당신이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제자 혹은 하나님을 찾는 모든 사람)의 보혜사 역할을 하는 것은 당분간일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보혜사가 제자들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혜사가 모든 사람의 내면에 깊이 깃들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그 뜻대로 각자 보혜사(산랑)를 영접하고 모시라는 말씀이다.

구약에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세상)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31:31-33) 하신 것도 마찬가지 말씀이다.

진리의 영, 신랑, 돕는 배필인 보혜사가 왔다면 뒷짐을 지고 계시지는 않을 것이다. 그분은 죄, 의,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 죄에 대한 책망은 저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함, 즉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육체, 욕망)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하노라”(고후5:15-16)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육체적 물질적 삶, 쾌락과 명예나 권세를 좇는 삶의 허무, 헛되고 헛된 바를 얼른 깨닫고 후회없는 삶을 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당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 바로 죄이다. 하나님 나라를 자기 안에 모신 사람이 육체를 통해 말씀이 원하는 바대로 살아나가는 것을 ‘의’라 한다. 그것은 무슨 일을 하든 후회하고 부끄럽지 않을까 조심하면서 마음을 챙기며 사는 삶을 말하는데, 그러한 삶을 팽개치고 제멋대로 산다면 당연히 책망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롭게 사신 예수 당신이 다시 아버지께로 간 후에는 너희(세상)는 다시 당신을 보지 못한다고 하셨다. 해서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하나님 나라의 왕은 사랑, 섬김의 왕이고 세상의 왕은 군림, 정죄(심판)의 왕이므로 그 심판하는 마음에 의해 스스로 심판을 받으리라는 것이다. 야고보는 이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2:13)고 했다.

그밖에도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롬9:23-24)라거나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그 말(마음에 있는 것, 선 혹은 악)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그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12:35-37),

혹은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판단)하노니”(요5:30),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요8:15),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한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12:47-48) 등등 심판에 대한 말씀은 성경에 차고 넘친다.

그리스도께서는 긍휼과 사랑으로 심판받을 영혼들을 세상 끝까지 애처롭고 가엾게 보고 계셨다. 물질과 권세와 욕망이 넘칠수록 홀로 반성하고 제 삶을 되짚어보는 것이 선한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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