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임함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
나라(βασιλεία : 바실레이아)의 히브리말은 「말쿠트」이다. 지역적, 공간적 의미의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 말씀의 힘이 미치는 영역을 뜻한다. "하나님의 성령(하나님의 정신, 하나님의 말씀)을 힘입어 귀신(육체의 일에 대한 탐닉에 빠진 의식)을 쫒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고 설명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임함은 육체적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 임함이 아니다. 육체 안의 영적 존재를 발견하기 전 육체의 주인 역할을 했던 이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님 나라의 임함이란 세상의 욕망을 좇아 달려가던 마차를 멈추게 하려고 이성이 말고삐를 잡아당기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가 어디에서 어디로 임하는가?
기도문에서 기도의 장소가 골방(하늘) 안이라고 했다. 또한 골방 안에 들어갔다는 것은 속 존재, 육체 속의 실제 주인인 자기 영(靈)의 존재를 이성이 감지한 상태를 가리킨다. 고린도 전서 5장 4절에서 바울은 자기 속사람의 존재를 영(靈)이라 표현했다.
그렇다면 골방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을 아는데 왜 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여전히 기도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육체의 이성이 육체 안의 존재를 감지했다고 하더라도 육체는 여전히 세상에 속한 죄의 관성(慣性)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은 아직도 여전히 육신에 속한 자로다"(고전3:1-3)라고 표현했다.
골방 안에 들어간 자는 육체의 이성이 육체 안의 속 존재를 발견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육신에 속했다는 것은 육신이 영적 존재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보다 육신의 소욕의 영향력 아래에서 종노릇을 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한 겉 육체에 하나님 나라가 임해서 육체가 하나님의 의의 병기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례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세베대의 두 아들과 베드로를 동반하여 기도할 때 일어난 사건에 나온다. 예수님이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 자고 있던 베드로를 향해 하신 말씀이 "마음(πνευμα 퓨뉴마 : 영)은 원이로되(πρόθμος 프로뒤모스 : 준비된)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이다. 즉 영은 준비되었는데 아직 육신에게 영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한다, 깨어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사건은 육체 속에 준비된 영이 육체에게 임하는 것이고, 육체가 영의 도구로 쓰이게 하는 것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나라가 임하여 달라는 기도 바로 뒤에 이어지는 말로서, 속에 임한 하나님 나라가 겉사람에게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된다는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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