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풍병자의 죄 사함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마9:1-2)
성경에서 죄란 도덕적이고 형법에 따르는 죄가 아니다. 성경의 죄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염려하고 타인보다 세상적인 것을 더 많이 누리려는 욕심을 가진 것을 말한다. 현재 감사할 것이 있음에도 감사하지 않고 기뻐할 것이 있음에도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자족하지 못하는 삶을 죄라 하며, 또한 배움을 통해 부족함을 인식하기보다 지적 우월감에 젖어 사는 것을 죄라 한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의 참뜻을 알고 누림)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라고 하였다. 없는 것을 가지고 누릴 생각을 하지 말라. 지금 현재 있는 것만 누려도 남음이 있는데 그것을 누릴 생각은 않고 없는 것으로 누릴 생각에 빠져 발버둥치는 너희가 참으로 불쌍하다는 말이다. 그들이 곧 죄인이라는 것이다. 출애굽 때 광야에서도 없어서 못 먹고 못 누린 것이 아니다. 욕심에 의한 불평, 불만의 삶에서 무욕에 의한 감사와 기쁨, 자족의 삶으로의 전환이 죄사함이며 구원이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믿음과 무관하게 중풍병자를 데려온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건강한 자에게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악한) 자에게 있느니라"(마9:12) 하였듯이 중풍병자는 자신이 영적 병자인 줄 인식했고 친구들은 사랑의 강권을 할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구원을 미래형으로 쓰지 않고 현재형으로 쓰셨을까?
구원을 현재형으로 쓴 이유
물질, 즉 육체는 시공간 안에 존재하지만, 영은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영은 시공간의 범위 밖에 있다. 성경의 태초, 즉 엔 아르케(ΈΝ άρχη)라는 단어를 동양의 언어로 바꾼다면 무극(無極)이라 할 수 있다.
무극, 즉 엔 아르케에서 탄생한 것이 태극 혹은 유극이다. 무극 혹은 엔 아르케는 에너지와 에너지의 근본인 정신이 형체를 갖기 이전의 상태이며 이때에는 물질도 시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물질세계 이전의 무극상태에서 에너지와 에너지의 생명이 형체를 얻기 위해 물질세계, 즉 유극세계로 터져나온다. 물리학에서는 이 사건을 빅뱅이라 한다.
에너지와 에너지의 생명정신, 즉 영혼의 씨앗이 육체와 결합되었다. 결합된 자신이 육체인 줄을 알면 시공간의 제한 속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 육체와 결합되어 있더라도 자신이 영인 것을 알면 그 육체가 여전히 시공간에 속해 있다고 해도 본질인 영은 시공간의 제한 밖에서 존재하게 된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영)은 살았고 운동력(ένεργης : 엔에르게스)이 있다"(히4:12)라고 했다.
무극에서 유극으로 터져나오고 유극에서 무극으로 환원되는 것이 창조의 섭리이다. 자신을 예수께 데려온 친구의 믿음에 의해 스스로의 믿음이 성숙되는 과정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중풍병자는 썩을 육체가 아닌 그 영이 육체를 통해 구원을 받았으므로 영의 관점에서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현재형을 써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구원해 줄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 순간 중풍병자는 구원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로 본 것이다.
영의 관점에서 구원이란 미래가 아니라 현재로만 쓰이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구원이란 완성의 개념이 아니라 부족함을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부족함을 채우는 수고를 하려는 친구들과 중풍병자의 태도는 그때 그 시점으로 본다면 구원을 받은 것이다. 구원이란 그 시점의 태도와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지 미래적 결과까지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시점에 구원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결과적 구원이 성취되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에스겔33:11-16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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