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35-44)
천지는 새 하늘과 새 땅에 곧 셋째 하늘인 낙원에 영의 몸을 입고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 이르러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처음 하늘과 처음 땅 창조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샤마임;하늘, 보이는 창공 너머 하늘을 뜻함)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우리의 콧 김(루아흐;성령) 곧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가 (마쉬아흐;메시아)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하이 네페쉬;산 혼=윤리 도덕적 인간, 율법적 인간, 마음에 양심이 있는 사람)이 된지라”(창2:7)
첫 아담과 같은 땅의 흙으로 빚어진 육체의 몸을 입은 사람들이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는 육체의 소욕을 천형처럼 지닌 채 살아간다. 하나님 말씀의 은혜에 의해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간직하면서도 육체 소욕의 본성 때문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죄의 본성이 심겨져 죽을 수밖에 없는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원하랴 탄식, 고백(롬7:24)한 사람이 바로 바울이다. 참 성도들 또한 바울처럼 되뇌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스로 죄가 된 곤고한 사망의 몸임을 고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너희는 죄 없다고 하신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8-9)”라고 하셨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운 사람들에게 천지는 존재 가치를 잃는다. 율법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서 그 역할을 다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다(롬3:20), 죄를 깨달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백하는 사람들이 됨으로 율법은 그 기능을 다한 것이다. 땅의 흙으로 빚어진 육체의 자리에서는 고난이 불티처럼 날아오를 뿐이다. 영광이 있다 한들 한때일 뿐이다. 욥기 5:7절로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전도서 3:10-11절로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들의 육신의 생명은 아침 안개 같고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 1:24-25). 천지 안에서 흙의 몸으로 이처럼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어디 있는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결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도록 하신 창조의 섭리인 것이다(롬8:18).
고난을 통과하지 못한 영광은 영광이 아니다. 영광은 영광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육의 몸이 살아가야 하는 물질세상 천지가 있었다. 육의 몸은 사람의 몸이고, 하나님의 뜻을 배워 마음에 가득 채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도 육의 몸으로는 죄의 법을 본능적으로 따르기에 결코 하나님의 법대로 살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영의 몸을 입고 영의 세계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서로를 지체처럼 사랑하고 살게 된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무엇을 말함인가? 천지, 곧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진다는 것, 그리하여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 뜻에 합당한 우리의 삶이 지속됨을 알리라 일러 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