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요8) - 박승현 목사님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1-32)
성경에서 말하는 제자는 어떤 스승 밑에서 일시적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불가분리적으로 하나님 말씀, 그리스도의 교훈, 그리스도의 영 안에 거하는 것이며 자신의 무의식적 몸까지도 하나님의 교훈이 배어 있어야 한다. 천년의 세월동안 차를 끓였던 도기는 차를 넣지 않고 물만 넣어도 차가 우려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성경에서는 우리 육체를 그릇, 호리병, 돌 등으로 상황에 따라서 비유한다.
여기에 비유의 말을 하나 더 첨언하여 우리 육체를 “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종이에 어떤 글을 새겨 넣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시가 되기도 하고 노래가 되기도 하고 연서가 되기도 하고 논문이 되기도 하고 추악한 그 어떤 것도 된다. 또한 종이에 향을 쌌다면 그 종이에서는 향내가 풍기듯이 그 말은 틀림없는 진리이다. 종이가 좋은 시, 좋은 책이 될 수는 없는 것이고 종이속의 내용이 좋을 시가 되고 좋은 책이 되는 것이다.
종이가 향은 아니지만 향을 싸고 있었던 것으로 인하여 향내가 종이에서 나듯이 우리 육체는 영적으로 좋고 나쁨이 없지만 우리 육체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의 시, 글, 향을 머물게 해두면 우리 육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낼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그렇게 되었듯이 너희도 그렇게 되길 원하면 내 교훈이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그러면 너희가 향은 아니지만 향이 너희를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진리가 자유케 한다
진리가 자유케 하는데 어떤 진리냐가 문제이다. 타인의 진리냐 자신의 진리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의 존재 즉 진리를 알게 된 존재만이 자유케 된다고 한다. 무엇으로부터 자유요 해방일까. 그것은 애굽으로부터 해방된 자유요 탐심으로 부터의 자유이다. 여기에서 안다는 것은 막연한 앎이나 지식적 차원이 아니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하나가 됨을 가리키는 것이다. 부부의 연을 맺은 자들이 초야를 치루면서 경험하는 것을 성경에서 “알다”라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들어서 알 수 없는 것, 경험의 세계로 들어가야만 아는 것이 진정 아는 것이다. 또한 진리의 앎은 실제로는 진리의 누림이 있는 자들을 세상 것으로부터의 자유, 무욕의 자유 속에서 활보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