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씻어드리는 마리아 (요12) - 박승현 목사님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씻어드리는 마리아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덕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에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요12:1-8)
마리아가 ‘삼백 데나리온’어치나 되는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린 것은 바리새인의 잔칫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예수님을 초대한 이 바리새인은 스스로 하나님을 위하고 영적으로 바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인 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의 삶을 흠모해서라기보다 당시 많은 이들로부터 추앙을 받던 예수님을 나름대로 판단해 보려는 뜻에서 초대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마르다는 잔치 준비를 거들었고 마리아는 예수께 비싼 향유를 붓고 발을 씻어드렸다.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눅7:39)고 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빚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눅7:40-47)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바위처럼 큰 죄를 지었다고 해서 물에 가라앉고 모래알만한 죄를 지었으므로 물에 뜨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큰 죄를 탕감 받은 자가 은혜에 더 감사하기 마련인데-그렇다고 일부러 죄를 더 많이 짓는 것도 옳지 않지만-지금 현재 그리고 과거를 청산하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삶을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초점을 둔 말씀인 것이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모습을 들어 진정 죄인의 삶을 청산하는 것은 아름다운 삶을 사는 자를 따르고 존경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마리아가 삼백 데나리온이라는 큰돈의 값어치를 지닌 향유로 행한 일은 이후 예수를 따르는 향기로운 삶을 살기로 작정함을 나타내는 것이며 죄 많은 옛사람의 죽음을 상징한다.
제자인 가롯 유다는 이 와중에‘삼백 데나리온을 가난한 자에게 주었으면’했지만 사실 그 속마음은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가만 두어라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잇거니와 나는 향상 있지 아니하리라”고 하신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한 집에서는 언제나 향유의 그윽한 향기가 흐를 것이다. 또 가난한 자를 도울 기회는 항상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삶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칠 기회는 그렇지 않다. 즉 사람의 욕망을 위해 쓰이는 것은 세상에 의존하게 만들며 끝없는 욕구불만으로 몰아넣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떡을 갈구하는 삶을 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