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하리라 (요14) - 박승현 목사님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하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요14:19)
‘세상’이란 신앙생활은 하지 않는 자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신앙생활을 세상의 목적을 이루는 방편으로 삼는 자들도 여기에 든다. 신앙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려는 게 아니라 타인을 자신의 이익, 의도대로 이끌고 바꾸려는 자가 세속적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 그런 믿음을 보셨기에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신 것이다.
성경에서든 세속적 개념에서든 간에 ‘본다(see)’는 것은 ‘안다(know)’는 것이다. 뻔히 보면서도 알지 못하면 그것은 진정 본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사실은 보지 않은 것만 못할 수도 있다.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 즉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의 속뜻이 그것이다.
“본다고 하니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9:39-41) 는 말씀은 알고 있다고 하니 죄가 그저 있다는 말씀이나 마찬가지다. 또 여기서 말하는 ‘죄’는 ‘무지(無知)’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학식이 부족하거나 세상살이의 요령을 모르는 어리숙함에서 보이는 그런 무지함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 말씀은 네가 알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자라는 말이다.
바울은 이를 두고 “우상의 제물(혹은 그 무엇일지라도)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고전8:1-2)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있는 의도(세상은 보지 못하되 너희는 볼 것이요)를 스스로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놓고 보면 분명히 그 뜻을 환하게 알 수 있다.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6:45-46)는 말씀은 그 관계의 속내를 잘 드러낸다.
하나님을 본 자가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씀을 제대로 듣고 배워 그 뜻대로 살려는 자는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셔서 자신과 함께 있음을 알게 된 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지식과 역사로만 이해하여 예수라는 존재를 자신의 명리에 이용하는 소위 ‘자칭 신앙인’은 역사적 예수를 우상화할 뿐이다. 예수님의 그 참뜻을 진리의 성령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삶을 또 다른 예수의 삶으로 가꿔가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