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있으면 (요16) - 박승현 목사님
조금 있으면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한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문의하느냐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의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이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6:16-22)
요한복음 12장 1절에서 20장 31절까지는 유월절 엿새 전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신 때부터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이레 동안의 기록이다. 붙잡히시던 그 밤에 말씀하신“나를 보지 못하겠고”와 “나를 보리라”는 모순되는 두 말씀 앞에 같이 두어 굳이 강조하신 “조금 있으면”의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당신의 공생애가 마지막 때가 되었다는 것과 당신의 수난과 죽음 이후 제자들이 곧 스승이 되고 종이 상전이 되는 참된 부활이 임박했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못하겠고’에 해당하는 ουχετι(우케티)는 ‘더 이상은… 아니다’라는 의미로서 제자들이 앞으로는 더 이상 예수를 볼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볼 수 없다고 하셨다가 다시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고 하셨으니 이는 사람의 말로는 모순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겠으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6-18)고 표현하였다
‘다른 보혜사=진리의 영=저가 너희와 함께=내가 너희에게’로 이어지는 말씀의 흐름을 보면 보혜사가 예수라는 그릇 속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도 말했거니와 진노를 담고 있는 그릇도 있고 긍휼을 담고 있는 그릇도 있는데, 그릇은 바로 우리(사람)라는 것이다.(롬9:22-24 참조) 말하자면, 육체는 그릇이고 그 안의 마음상태, 속사람이 그릇에 담긴 실체라는 것이다. 예수는 긍휼의 삶을 살다간 그리스도의 그릇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그릇인 예수는 깨져서(죽어서) 없어질지라도 그릇 속의 실체인 그리스도, 보혜사, 진리의 성령, 돕는 배필은 없어지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를 두고 “너희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14:21-23)고 하셨다. 그리고 여기에 해당되는 인물이 바울일 텐데, 그는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갈1:16)라 했고,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그 말씀이 씨로 임해 싹이 트고 장성하여 실체인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서 ‘그리스도’를 다시 보게 될 때는 ‘예수’를 잃은 슬픔이 도리어 기쁨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말씀은 그 말씀을 모시는 우리들과 함께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