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옵는 것은 (요17) - 박승현 목사님
내가 비옵는 것은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요17:20)
예수님은 세상사람들이 하나님을 거듭 믿는다 하면서도 사실은 그분에 대해 까막눈이라는 것을 안타까워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지 무자비한 복종을 강요하고 힘겨운 책무만 어깨에 올려놓으시는 분이 아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길을 잘못 든 종교인들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참 뜻, 즉 “나의(하나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58:6) 했던 말씀을 보면 안다.
분명 신앙, 종교는 필요하다. 사람들이 오래 믿어 온 종교가 아닐지라도 세상사람 누구나 자기 나름의 신념이 신앙, 종교가 되는 삶을 산다. 바울은 이를 두고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2:12-15)고 했다.
체계와 조직을 갖추어 전해진 기존 신앙에 얽매일 때 생기는 폐해도 있지만, 기성 종교나 신앙에 기대지 않은 개인의 신앙 또한 위험할 수 있다. 지도 한 장 없이 떠나 길을 잃는 나그네 신세가 되기 쉬운 것이다. 물론 자신의 삶이 지향해야 할 곳이 명확하게 표시된 ‘지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기성 종교에 발을 들이지 않더라도 세상 속에서 마땅히 하나님의 일을 하고 살 수 있다.
더 나아가 기성 종교에 몸담은 이들이 신앙의 뜻, 종교의 목적에서 벗어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넌지시 깨닫게 해줄 만한 삶을 몸소 보여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보여주었던 예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는 오래 묵은 기성 종교였고, 그 유대교 측에서 볼 때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단’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교의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가 아니었으며 사실은 유대교인들이 참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예수님 당신이 하나님 아들이라는 것, 즉 참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증명(혹은 아버지가 항상 자기와 함께 계시므로 그 뜻과 심성을 떠난 생각과 마음, 행동을 취할 수 없음)되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과, 그들의 전도를 따라서 당신을 따르게 된 모든 이들이 당신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되기를 간구하는 기도를 올린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와 저희 말을 듣는 그 어떠한 사람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알게) 하옵소서”(요17:21) 하신 말씀이 그런 뜻이다. 즉 예수 당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된 것처럼 세상사람들이 예수 당신의 말씀을 믿고(듣고, 그로 인해 어느 날 그 말씀의 존재와 같은 심정, 행동을 취하게 됨) 또 그로 말미암아 당신처럼 하나님 아버지와 항상 함께하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수없이 요동치고 변덕을 부리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 마음 한 번 뒤집기가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예수님 따라 하나님의 길로 나서자고 결심하기는 참 힘겹다. 이때만큼은 게으른 마음이 철벽이라서 우리들은 늘 망연자실 하는 것이다. 손바닥 뒤집듯 하루라도 빨리 얼른 마음을 뒤집어 버리자.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 예수님께 돌아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