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거짓말과 예수님의 담대함 (요18) - 박승현 목사님
베드로의 거짓말과 예수님의 담대함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에게 물어 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가로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뢰되 나는 아니라 하니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요18:19-27)
“이불 밑에서 주먹 쥐기” “이불 쓰고 만세 부르기”라는 말이 있다. 무슨 일에 맞닥뜨려서 실제로는 옴쭉 달싹 못하고 혼자 있을 때 그저 의미 없는 큰소리나 친다는 말이겠다. 베드로는 예수님 당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했으나 뒤에 그의 행동은 어떠했는가? 성경의 기록을 보면“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가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부인하리라”(요13:36-38)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끌려간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그 집 여종이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다그치자 이를 부인하고 만다. 그리고 닭이 울었다. 마태복음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더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마26:74)는 대목이 그것이다.
신앙은 영과 혼, 몸을 모두 아우르는 것인데, 육신이 아직 건강할 때는 영혼을 위한다는 것이 관념적이고 피상적이기 쉽다. 그래서 육신이 위험에 처하거나 쇠약해지면 본능적으로 영혼과 무관한 언행이 나오게 된다. 이렇듯 신앙, 믿음의 곡절을 간절하게 경험해 본 사람만이 영혼을 위해 육신을 벗어도 좋다는 확신의 상태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신앙의 확신이 자신의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닫고 이를 고백하게 된다.
그것을 바울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우익함이니라… (육신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빌1:20-23)라고 했다.
또한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헤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는 말씀도 기억하자. 혼자 생각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들 위해 죽겠다고 나서는 것은 만용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치열한 분심을 내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야 참되고 바른 삶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만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과 하나 된 삶을 살고 있었으므로 당신의 교훈이나 당신의 제자들에 대해 묻는 대제사장에게 나는 은밀히 가르친 바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씀하실 수 있었다. 세상에 부끄럽지 않고 숨길 필요가 없는 언행의 삶을 사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예수님의 제자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니 삶을 살아가며 진실하고 또 때로 담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