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이야기

은밀한 중에 보시고 공개적으로 갚으신다 (마6) - 정광교회 박승현

LifeProduce 2017. 5. 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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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중에 보시고 공개적으로 갚으신다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공개적으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그를 : 성령)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6:6-8)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신 것을 타인은 모를지라도 기도한 본인은 안다. 골방의 기도를 한 자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확연하게 알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막연하게 희망하고 살 뿐이다. 골방의 기도를 다른 표현으로 바꾸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성령)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이다.

골방의 기도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그리스도의 음성이 내 안에 가득 차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질 때 내 생각이 나의 주인이 아니다. 주인 된 그리스도의 음성만이 내 속에, 내 의식에 있다. 그리스도의 의식만이 나의 의식되어지고 내 겉사람은 하나님이 공개적으로 자신에게 갚아주신 것을 안다. 그러므로 세상것에 대한 목적이 없다. 내 안에 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원하심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속에서 그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할 목적도 계획도 없다. 그저 순간순간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게으르지 않고 그렇다고 급히 서두르지도 않는 가운데서 갈 길을 묵묵히 갈 뿐이다. 세상에서 이루어야 할 목적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것을 받은 자는 자족, 평안, 여유로움만이 있다.

중언부언하지 말라
골방에 들어간 후에 말・언어・지식은 그 속사람 개인에게 있어서는 소음에 불과하다. 그 골방의 세계에서는 언어와 생각이 무용(無用)하다. 골방의 세계는 존재의 세계이다. 자신이 진정 골방에 들어간 자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자. 기도할 때 말을 많이 하고 중언부언한다면 유형의 골방에 들어갔어도 무형의 골방에 들어가지는 못한 것이다. 유형의 골방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말과 생각과 원함이 없다면 무형의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과의 기도, 대화가 시작된 자이다.

골방에 들어간 자는 그리스도의 원함만이 있고 내 뜻이 없으므로 그것을 이루려고 많은 말을 하고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의 원함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게 되어도 도구로 쓰이게 돼서 감사할 뿐이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자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다. 우리들의 육체는 그리스도의 남겨진 행할 일을 하나님의 자녀를 위해 해야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남겨진 고난을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우리 육체에 채우게 하셔도 감사하고,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허락하지 않으셔도 그 또한 감사할 뿐이다.

기도는 성령을 구하는 것
골방에 들어가지 못한 이방인의 기도는 성령을 구하는 것과 관계가 없다. 이방인들은 자기의 겉사람의 욕심을 기도라는 명분으로 포장했을 뿐이다. 그러나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는 자는 성령을 구할 뿐 그 무엇도 달리 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은 구한다고 해서 주시는 것이 아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성령은 항상 아버지가 주셨다. 그것을 사람들이 받지 못했을 뿐이다. 인간에게 성령을 받을 준비가 돼 있어야 성령을 받을 수 있다. 씨를 뿌려도 땅이 기경되어 있지 않으면 소용없듯이 성령을 주셔도 받을 수 있는 마음밭을 기경하지 못한 자는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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