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άμαρτία)와 용서에 대하여 (마6) - 정광교회 박승현
죄(άμαρτία)와 용서에 대하여
"우리가 우리에게 죄(όφειλέτης 오페일레테스 : 빚, 채무)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όφειλέτης)를 사하여 주옵시고"(마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όφειλέτης)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άμαρτία : 하마르티아)도 사하여 주옵시고"(눅11:4)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똑같은 내용이지만 한 군데에서 단어의 쓰임이 다르다. 전체적인 내용을 알게 되면 단어의 쓰임이 달라도 무방하지만 배우는 과정에서는 누가복음 11장 4절을 통해 죄의 용서란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성경에서 가리키는 죄는 세상적 죄를 말함이 아니다. 세상적 죄는 성경적 죄의 부분일 뿐이다. 또한 세상적 죄를 짓지 않는다고 죄가 없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가리키는 죄를 없애게 되면 자연적으로 세상적 죄는 생기지 않는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야고보 서신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리라"(약1:15)고 기록된 그 죄이다. 욕심 때문에 어떤 형편에 처하든 자족하지 못한다. 풍부에 처할 때에는 물질의 노예가 되어 궁핍한 자에게 베풀 줄을 모르며 교만하고, 궁핍에 처할 때 역시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떡 이상의 것, 세상적 가치기준 이상의 것으로 사는 것을 배우지 못해 처한 환경에 원망을 품으며 풍부한 자에게 비굴해지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라"(롬3:23)고 했다. 반면에 예수님은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 하였느니라"(마6:28-29)고 하셨다. 모든 사람은 욕심 때문에 생긴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역사상 부와 명예, 권세 그리고 지혜까지 겸비했던 솔로몬도 한낱 들꽃의 영광에 미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죄인이란 나쁜 놈이 아니라 가엾은 사람이다. 왜 그렇게 스스로를 세상의 노예로 만들어 누림 없이 사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만날 자를 만나고 듣고 보는 것을 통해 자기 죄를 사함 받으라 하신다. 욕심과 욕망의 전차에서 내려 자연의 오솔길로 유유자적하게 걸어가며 자족을 느끼는 사람이 되라 하신다.
이렇게 먼저 죄를 사함 받은 자는 아직도 여전히 욕심의 종이 되어 사는 사람에 대해서 먼저 받은 은혜 때문에 빚진 자의 심정이 생긴다. 빚진 자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건을 주기도문에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빚)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άφίημι 아피에미 : 탕감)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을 두고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빚진 자"(롬1:14-15)라고 하였다.
용 서(άφίημι 아피에미 : 탕감)
성경에서 말하는 용서는 봐주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용서는 사단, 즉 명분 속에 숨겨진 악의 실체, 성령의 이끄심이 없는 사람의 생각에 속지 않도록 사단의 궤계(詭計)를 드러내주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두고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이 오히려 사망에 이르게 만드는 사단의 속임수를 알게 해주는 것이 용서라고 하였다.
죄 탕감
받은바 은혜를 따라 누리며 타인에게 빚진 자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다 보면 아직까지 자기 자신이 인식하지 못했고 버리지 못했던 죄의 근원, 곧 무의식의 욕심까지도 용서받게 된다는 것, 그것이 우리 죄를 사해 달라는 기도의 의미다. 즉 지속적인 깨달음을 통해 무지의 죄 속에 있지 않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