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신앙 (마8) - 정광교회 박승현
바다 신앙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좇았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 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마8:23-25)
배와 바다
'인생은 고해(苦海 : 괴로움이 많은 속세)'라는 말이 있듯이, 성경에서 바다란 고단한 세상살이 자체를 상징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처럼 배는 공동체를 뜻한다.
제자와 바다
영적 초보인 선원들이 거친 세상의 욕심 가득한 바다에 나아가 살면서 풍랑으로 물결치는 바다에 빠지지 않고 세상과는 구분된 삶을 추구하려고 예수를 좇았다. 그리고 이론과 실상의 차이로 시작부터 큰 낭패를 보고 있다.
파도 속에도 주무시는 예수
예수를 선장으로 한 예수호라는 배도 세상의 유혹과 세상적 가치의 추구에 의해 물결치는 거친 바다에서 다른 배와 다름없이 큰 풍랑과 파도에 부딪히게 되었다. 영적 존재의 공동체라고 해서 다른 이익집단과 달리 세상적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처하는 사람들의 반응만이 다를 뿐이다.
제자들은 예수를 좇기 전에 분명히 그분으로부터 제자의 길이란 쉽지 않다는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듣고 생각했던 어려움과 실제 겪는 어려움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또한 그 어려움은 실상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히 주관적인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詭術)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4:13-14) 했다.
신앙의 배에 타고는 있지만 신앙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 못한 어린 상태일 때는 사람의 술책과 간사한 유혹, 세상의 모든 교훈의 풍조에 요동이 심하다. 절대적으로 어려워서 헤매는 것이 아니다. 세상적 가치 추구가 마음속으로 밀려 들어와 힘이 든다. 마치 자신만 바보가 된 것 같다.
바보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진정 바보는 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세상것을 추구하지도 못하면서 또 세상것을 초월하지도 못한 채 이론적으로만 어설픈 바보가 되어버린 자신이 한심스럽다. 제자인 자신은 세상의 파도에 빠져 죽을 상황인데, 예수께서는 태연히 잠만 주무신다. 그때 제자들이 할 일이라곤 한 가지뿐이다.
예수를 깨우는 신앙
예수님을 깨우는 것이다. 예수도 제자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예수와 자신이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면 상황을 바꾸면 되겠지만 어차피 상황은 같다. 상황이 같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도 평안할 수 있기 위해서는 예수의 상태와 같아져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스승된 예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제자는 스승을 깨운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 속의 제자들은 운이 좋았다.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줄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예수님. 그런데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그분 같은 아비 된 스승도 찾기 힘든 이때에 우리는 어찌해야 될까? 자기 겉사람은 육체의 욕구와 하나님 말씀의 이론이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마다 끊임없이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어찌해야 하나…….
스승을 찾아라
요동치는 세상의 거친 물결을 잠재울 스승은 결국 자기 안의 예수 그리스도이다. 바울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갈1:16)라고 하였다. 자기 속에 스승이 나타나면 세상의 거친 파도는 잠잠해진다. 내가 거친 세상 속에서도 잠을 잘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