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마17) - 정광교회 박승현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17:1-4)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
예수님은 제자들의 신앙 상태를 점검하고 믿음을 더하게 하시려고 그들과 함께 높은 산(?)에 올랐다. 산에 오른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는 예수님의 진면목(眞面目 :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 속에서 모세를 보고 또 엘리야를 보았다. 그런데 그들이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바와는 너무 달랐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민들에게 그분의 뜻을 조금이나마 드러내 주기를 바라며 높은 산에 오르게 했으나 제자들은 높은 산의 상태에 안주하기를 원했다.
모세(율법의 대표), 엘리야(선지자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는 예수님(섬기심의 왕)을 보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중요한 삼직(三職)을 예수가 감당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출애굽을 감행한 모세는 사람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가나안을 바라보게 만든 지도자였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시킨 사랑의 존재로서, 모세에 의해 제시되어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가나안(천국)이 자기 안에 충만하게 해 주는 율법의 완성자였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병거를 타고 승천한 자로서 그리스도, 즉 구세주의 오심을 예비하는 자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오실 길을 예비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엘리야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에게는 세례요한이 엘리야였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예수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기에 앞서 길을 닦은 이가 요한이기에 그를 엘리야라 할 수 있지만, 제자들에게 요한은 요한 자신의 말처럼 엘리야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육체의 고난을 자기의 몸에 채우게 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엘리야이기에,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자 동시에 엘리야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승천하지 못한 엘리야이고 예수는 승천한 엘리야라 하겠다.
또한 예수는 모세의 길과 엘리야의 길을 완성한 자로서 율법을 강요하지 않는 율법의 완성자이다. 또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가 된 자로서 선지자이다. 그러나 예수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다 여기지 않고 섬기는 종으로서 왕의 직분을 행하는 삶을 산다. 이것이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가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다.
제자들이 모세와 엘리야를 본 것은 예수 속에 완성된 모세가 있고 엘리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즉 영적으로 눈을 떴음을 상징한다. 그러나 제자들은 눈뜬 자의 역할을 맡아 사는 삶보다는 눈뜬 자의 위치에서 머물러 살고자 하는 마지막 욕망을 내보인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산 밑으로 내려가자고 한다. 제자들의 마지막 욕망을 예수가 씻어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