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롬5:8-21) - 정광교회 박승현 목사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롬5:8-21)
성경에서 일컫는 죄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그릇된 열심을 내는 것이다. 롬10:2-3절에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다.
죄를 모르면 하나님의 의도 모른다. 죄를 모르는 하나님의 의는 가치가 없다. 마치 질병의 고통을 겪어 본 적 없어서 건강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인 사람이 당신의 은혜로 주어진 믿음을 통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처음부터 작정하고 창조에 임하셨다. 그래서 흙으로 빚은 처음 창조는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혀서 이루어졌다. 흙에 속했다는 단어 ‘코이코스’는 먼지 낀, 더러운, 성령을 거스리는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땅의 흙으로 빚어진 육체적 몸을 지닌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살아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힘들다. 그래서 바울은 롬7:22-25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하였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말은 ‘있는 줄 알았는데 없는 것이 사랑이요 없는 줄 알았는데 있는 것이 허물이 많다’라고 풀어 설명할 수 있다.
율법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하나님의 뜻이고, 그 율법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데도 당신의 뜻을 거스르는 본성이 있도록 흙의 몸으로 사람을 만드셨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절)를 보라.
하나님은 사람을 온전한 사랑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 처음 창조한 육체의 사람을 흠도 많고 티도 많은 죄의 본성을 지닌 존재로 빚었다. 사람으로서는 육신을 지니고 죄의 법을 따르는 본성을 제 안에서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다만 하나님만이 사람을, 육의 몸을 영의 몸으로 바꿔 주셔서 그 죄의 본성을 말끔히 없애 주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육의 몸을 지닌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율법으로 육의 본성이 죄가 됨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롬3:20절에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하였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 죄가 더해졌다는 말은 율법으로 죄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육체의 본성은 성령의 소욕을 거스르는 죄의 본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졌다는 것이므로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거기 있음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울도 믿음의 분량과 연륜이 더하면서 자신이 느끼는 은혜를 여러 가지로 표현했다.
고전15:9절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딤전1:15절에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엡3:8절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심이라” 등이 그것이다.
바울은 제가 지닌 본래 본성이 미약하고 죄 중에 있으며 하나님의 뜻에 무지했다는 것을 깨닫고 통렬히 참회한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은혜, 사람을 지으신 참된 의도를 세상에 전하고자 이방의 산하를 떠돌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제 여기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