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나 요한은 너희 형제라 (계1) - 박승현 목사님

LifeProduce 2016. 6. 1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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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요한은 너희 형제라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창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9)

 

요한은 하나님 은혜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들의 모임(공동체)를 향해 이 계시의 글을 썼다. 그 글 중에 너희 형제라고 표현한 것은 자신이 성도들과 신분에 있어서 차이가 없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혹시라도 하나님의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사도, 선지자들이 일반 성도보다 특출하다는 느낌을 주거나 지나친 존경을 받아 우상처럼 신성시되는 폐해를 염려하여 조심스럽게 써내려간 것이다. 히브리서에도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2:11) 하였다. 형제라는 말의 뜻은, 나 또한 너희와 같이 태어나서 비슷한 생활을 하는, 육체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환난

환난(患難)은 문자 그대로 근심과 재난을 뜻하지만, 헬라어 들립시스(θλιφις)(영혼의) 상처, 고뇌, (십자가)을 진 것 등의 의미를 지닌다. 예수, 그리고 그분을 통해 먼 길을 걷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환난 없이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첫 번째 환난은 자기 자신을 사랑의 충만한 존재로 성장시키는 가운데 겪는 환난이다. 그것을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 (참사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단련, 훈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5:2-5)라고 설명했다. 신앙인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어떤 대상을 바라보면서 존경하고 즐거워한다. 그리고 자신이 존경과 환희에 차서 바라보던 그 자리에 서서 훗날 누군가에게 소망의 불빛이 되어주고자 한다. 그러나 바라볼 때는 즐거웠으나 스스로 사랑의 존재가 되는 수고를 시작한 순간부터 환난이 시작된다. 바울은 바로 그 환난을 즐거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환난은 외부에서 오는 것도 포함하지만 애초 내부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 사랑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며 살기 시작하면 이전과 다른 것을 느끼게 되는데, 자신이 육체 중심의 존재라는 것, 또 자기한테 하나님은 명분일 뿐인데다 실제 저의 참모습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확연히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모래 위에 세운 신앙, 믿음의 집들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것을 바울은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5:16-17)고 갈파했다.

사람은 본질상 자기 이익에 반하는 것을 보면 진노를 보이게 돼 있다. 바울이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2:3)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본질상 진노의 자녀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 은혜 가운데 하나님 사랑을 바라보게 되고 그것을 즐거워하다가 마침내 사랑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 바로 이때 바라만 볼 때와는 다른 환난이 시작된다. 그리하여 내적 갈등이 시작되고, 마침내 성령을 따라 육체의 본성이 영적으로 육체에 스며들게 되었을 때라야 비로소 환난은 끝나고 평안이 찾아온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이 환난의 진정한 끝이 아닌데, 이어 두 번째 환난이 찾아온다. 첫째 환난이 자신의 영적 성장의 진통이었다면 두 번째 환난은 자기 주변사람에 때문에 겪어야 하는 그런 것이다.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환난이다. 예수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한글성경에 없고 헬라어 사본에는 있음.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히 대하며 너희를 모욕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고 하셨다.

사랑하기 힘든 사람이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로 세상에서 살면서 영혼의 상처를 많이 입은 불쌍한 사람이다. 참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서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을 내기 힘든, 미운 자의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미운 사람을 매로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은 그저 착각일 뿐이다. 다만,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참 사랑만이 상처투성이의 영혼, 굶주린 사람을 치유하고 배를 불리는 회초리, 곧 참된 혹은 참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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