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 (계1) - 박승현 목사님

LifeProduce 2016. 6. 1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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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11)

 

나팔 소리는 전쟁을 준비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내내 사람들의 귓가에서 울려댄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라”(11:34-36)고 하셨다.

이야말로 우렁찬 나팔 소리, 선전포고가 아닌가. 가족들이 세상 탐심으로 가득한 가치관으로 무장한 사람들이라면 그를 걱정하고 아끼는 식구들과 영적 사랑의 전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육체적 본능의 삶을 벗어나 영혼이 따뜻한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전쟁, 불화가 예수님 말씀의 검, 불화, 원수일 것이다.

 바울은 이를 두고 우리의 씨름(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궁극적 원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6:12)고 하였다.

그리고 그 싸움을 준비하는 것을 두고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고전14:8-9)라고 했다. 그러므로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다는 것은, 영적 사랑의 전쟁을 준비케 하는 바른 하나님의 교훈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것을 뜻한다.

일곱 교회에 보내라

일곱 교회로 구분되었으니 신앙생활도 각기 속한 교회에 따라 일곱 가지로 다를 것이다. 저마다 제 기준의 신앙생활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제 믿는 바가 진리의 척도라는 오만과 편견 속에 빠져 있을 게 뻔한 상황이다. 따라서 보는 것을 책으로 써서 일곱 교회로 보내라 하신 것은, 저들 일곱 교회의 신자들이 더 높고 크고 깊은 안목으로 하나가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일 것이다.

편지, 즉 글은 생각으로부터 시작된다. 글이나 말은 표현된 생각, 의식이다. 의식에도 에너지가 있지만 말이나 글은 의식보다 울림이 크고 깊다. 말이나 글로 제 할 바를 끝내는 사람이 많지만 신앙인은 말, 글이 목적이 아니고 그것들을 통해 자기 의식의 생각을 표현하고 그 다음에는 몸소 행하게 된다. 행하는 삶은 움직이는 말(), 살아 있는 편지가 된다. 생각이 글로 옮겨져 편지가 되고, 편지의 글은 받는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 그 사람이 곧 편지가 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의 의식으로 다가왔으며, 다가온 그 의식이 곧 우리 삶이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신 것이고, 그것을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한다, 하나님을 체험했다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계시록은 결국 편지를 통해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체험한 자가 스스로 기꺼이 편지가 되어 살아가도록 하는 데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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