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자 (계3) - 박승현 목사님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자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신앙의 본질은 믿음을 입에 올리는지 여부 또는 형식에 있어 믿음의 태도를 보이느냐 마느냐의 문제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직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린 것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중에도 말씀하시길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하셨다.
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하고 행치 아니하느니라”(마23:3)고도 하셨다.
내뱉는 말과 삶을 똑떨어지게 한 가지로 하며 산다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그러나 자신은 그렇게 실천하려는 마음 없이 다른 이를 가르치려고만 드는 것은, 세상 지식을 전할 때는 몰라도 진리 지식의 경우에는 가당치 않다. 의사가 하는 짓은 따라하지 말고 다만 시키는 대로 하면 장수할 수 있다는 농담이 있다. 사람의 일이 다 이러하다.
인자는 사데 교회를 향해 당신을 일러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로”라고 표현하셨다. 일곱 영이란 일곱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존재하시는 성령을 가리키는 말이고, “하나님의 일곱 별”이란 일곱 교회를 보호하고 돌보시는 일곱 사자(천사, 사도, 하나님의 바른 섬김의 일꾼)를 의미한다. 이땅의 모든 교회 성도를 올바른 삶과 교훈으로,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보내진 자를 말한다. 이러한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상태) 자”라고 판단하셨다.
이런 판단은 심판이나 징계의 의미가 아니며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뜻이다. 이러한 표현이 사데 교회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들, 다른 많은 사람들의 신앙이 사데 교회와 같다는 것을 깨달아 내 신앙의 태도가 그와 같지 않은가 살펴 되돌아봐야 한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바울 사도가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3:7)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항상 배우기는 하지만 배운 그것을 몸에 익혀 삶에서 실천하기보다는 배움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을 가려 말한 것이다.
배움과 실제 삶 사이에 엄존하는 거리에 대해 깊이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 말로는 신앙인이지만 삶의 태도로 보아서는 죽은 신앙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야고보 장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고 분명히 정리했다. 믿음은 말씀에 의해 형성되며,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증거 되어진 하나님의 살아 있는 성령의 씨이다.
성령의 씨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품고 언젠가는 그대로 살 수 있기를 소망하며 인내를 친구 삼아 기도하는 삶을 살다보면 조금씩 의식 변화의 싹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말씀(씨)을 받아들이되 마음밭에 품고 기도하기보다 머릿속에 지식 창고에 쌓아두거나 타인에게 드러내려고 말씀을 제 입맛대로 지지고 볶아댄다면 그것은 죽은 자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와 밖에 있는 자, 그리스도의 도움을 받아야 할 자들로 구분한다. 육신으로 살아 있으며 영혼이 깨어 있는 자와 육신은 살아 있으나 영혼이 죽어버린 자들이 그들이요, 육신으로 살아 있으나 영혼이 잠들어 있는 자들이 도움을 받아야 할 자인 것이다. 사데 교회는 엄밀히 말해 육신으로 살아 있고 영혼이 깨어 있으나 잠자고 있는 척하는 자들이다.
잠든 자는 흔들어 깨울 수 있으나 잠자고 있는 척하는 자들은 깨울 수가 없다. 잠들지 않은 자의 잠을 어찌 깨운단 말인가. 말씀의 씨를 갖고 있으나 마음밭에 심어 열매를 맺기까지 수고를 해야 하는 줄 알기에 모른 척하고 지니고만 있는 자들이 그들이다.
골고다의 길을 오르는 예수께 돌을 던진 자들과 꽃을 던진 자들을 생각해보자. 돌 던진 자는 오히려 용서의 기회를 가졌을지 모르나 꽃을 던지는 자는 용서 받기 어렵다. 잠든 자, 죽은 자보다 그런 척하는 자들이 교활하고 교만하기가 이를 데 없이 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