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의 회 (계3) - 박승현 목사님
사단의 회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계3:9)
성경에 빈번하게 등장하는‘사단’이라는 단어를 콕 집어 실감하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보통 하나님의 대적자이며 영적으로 매우 흉악한 존재라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념이 아주 틀린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개념으로만 접근하면 사단을 우리와 동떨어진 세계에 있는 영적 존재 혹은 하나님과 겨룰 만큼 큰 힘을 가진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들 인간은 사단을 이기기 위해 하나님 편에 설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 가엾은 피조물이 될 수밖에 없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단은 실제로 우리 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어서 차라리 친숙하기까지 한 것은 아닐까 싶다. 성경에는 사단에 대한 기록이 여러 번 나온다. “큰 용이 내어 쫓기는 엣 뱀(나핫시: 간사한 사람, 교활한 자, 종교의 정신은 없고 형식만 갖고 있는 무리)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계12:9),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3-15) 등이 그것이다.
또한 베드로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 당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큰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 삼일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신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간하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하자, 예수께서는“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16:16-23)라고 하신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내면에 하나님의 존재 즉 말씀을 통한 사랑을 채워 주변에 전하는 삶을 살기보다 하나님을 수단으로 이용해 타인들에게 고임 받고 대접받고자 하는 탐심이 곧 사단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그런 그릇된 신앙관을 바로잡으시려고 그를 향해 “사단아 물러가라”고 했던 것이다. 그냥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는 식으로 말씀했어도 뜻은 통했겠지만, ‘탐심’은 ‘사단’만큼 의미가 깊고 넓은 영적 용어가 아니다. 그래서 탐심을 버리라고 하신 게 아니라 대놓고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셨던 것이다.
성령과 귀신, 사단은 육체를 옭아매어 저희의 도구로 삼으려고 욕심을 바탕으로 물질, 명예와 권세를 미끼처럼 우리들 면전에서 흔들어댄다. 반면 성령은 우리 본심의 회복을 기다리며 인내하신다. 그리하여 물질, 명예, 권세로 육체의 한때를 쾌락과 헛된 명예, 영화로 치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해서 죽음을 맞이할 때 그런 삶을 통렬히 후회하지는 않을지 스스로 질문하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기를 원하지만, 최종 선택권을 가진 자는 결국 우리들 사람이다. 선택하라, 후회 없는 삶을.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