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임을 당한 영혼들 (계6) - 박승현 목사님
죽임을 당한 영혼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리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계6:9-11)
다섯째 인을 떼고 나자, 바람직한 신앙의 삶 때문에 세상에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을 보았고 그 존재들의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신앙의 길에서 무엇을 보았다는 것은 곧 알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것을 자신도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양, 염소, 소 같은 희생 제물들의 피를 번제단 아래에 뿌렸는데(출29:12, 레4:7), 죽임을 당한 영혼들의 피도 제단에 뿌려졌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제단 아래”있다고 하였다.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이 하나님께 호소한 내용
“땅에 거한 자들( τωνκατοικουντων επι τηζ γηζ톤 카토이쿤톤 에피 테스 게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해 달라는 것이다”을 보자. 땅에 거하는 자들이란, 하늘은 관심도 없고 오직 육체를 지닌 세속의 삶에 집착하여 사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 혹은 ‘하나님 뜻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들이다. 영적 세계와 하나님의 존재를 참으로 안다면 누가 당신께 대적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영적 존재도 아닌 사람이 하나님께 대적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분께 대적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심원해 달라는 것은, 우리 원한을 세상에서 그러하듯 복수해 달라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몰라서 당신께 대적하여 당신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힘쓰는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존재들을 언제까지 그대로 두실 것인지 묻는 것이다.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잠시 동안 쉬어라 하셨다
흰 두루마기는 의롭고 순결하게 자신의 신앙을 간직한 승리의 삶을 사는 것을 상징한다. 이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탄원에 답하시기를 “너희는 아직 잠시 동안 쉬어라 너희와 같은 삶을 사는 자가 차기까지”라고 하셨다. 아무 말 말고 안식을 누리라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신앙은 너 자신과의 관계이므로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이르신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베드로가 요한을 두고 예수님께 그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묻자,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답하신 것을 기억하자(요21:21-23).
신앙은,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 어떠한 영적 상태를 지켜 갈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타인에 자신의 의견을 하나님을 통해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간다 해도 넓고 깊은 높은 그 뜻을 전부 다 알 수 없다. 은혜로 인해 그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행운이 임하였을 뿐이다. 그렇기에 기도하고 의견을 말할 수는 있어도 주장할 수는 없다.
삶의 고난과 고통을 즐길 수는 없지만 그것들 없이 스스로 어떻게 성숙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겠는가? 내가 견뎌내고 살아냈다면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을 성장통으로 알고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원하시며 다행히 그것을 섭리 가운데 도우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