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거하는 자들의 악행 (계11) - 박승현 목사님
땅에 거하는 자들의 악행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계11:9-11)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3:5)-
죽임 이후의 진로를 피하려고 성전 밖의 마당만 밟는 신앙도 있다. 그릇된 탐심을 하나님이라 부르는, 이런 신앙을 가진 이들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참뜻의 삶을 살면서 당신을 증거하는 증인들을 못 견뎌한다. 두 증인이 증거하는 것이 자신들의 고정관념과 다른 것, 혹은 두 증인의 이야기가 양심을 찔러대므로 견뎌내지 못한다.
해서 하나님의 올바른 뜻을 전하며 사는 두 증인을 죽이기까지 한다. 서양의 중세 암흑가에는 종교적 판단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도 했지만 법치제도 아래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다만 탐심의 신앙을 가진 무리가 진리의 길을 가는 참 증인을 사지로 내쫓고 자신들의 신앙이 옳다고 자증, 자축하기도 한다.
사도 바울은 그 같은 경험을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그리스도의 일군이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함이라 …내가 생각하건데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악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 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는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고전4:6-13참조)한 것과 같은 일이 세상 역사가 끝날 때까지 반복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삼일 반 후에
사흘 반 동안 두 증인의 시체를 목도하며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 자가 무덤에서 나와서 새롭게 산 길을 살아간다. 삼일 반 후에 하나님의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던 자들이 크게 두려워한다는 이 이야기의 뜻은 무엇인가. 내가 원수조차 사랑으로 불쌍히 여길 때면, 그 원수들은자신들의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 볼 수밖에 없고 자신들이 세상적으로 죽이고 조롱했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해 두려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