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계11) - 박승현 목사님

LifeProduce 2017. 3. 18.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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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11:13)

 

두 증인이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삶과 말씀으로 전하게 되자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슴 [그레데 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디도서 1:12)]의 면목이 뚜렷해진다. 이들은 모르는 것도 아는 채하고 정욕을 탐하는 데 하나님을 끌어들인다. 또한 저희의 능력으로 알 수 없는 것을 이성적으로 보고 배우려 들지 않고 오히려 부인하고 훼방하는데, 다시 말해 이들은 제 입으로 말하는 하나님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아벨이 아닌 가인의 길을 따르고 경건을 유익의 수단으로 여기는 거짓 종교인들인 것이다.

 따라서 증인은 이들의 반대쪽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천국 된 사랑과 긍휼의 마음)로서 내려온 분이시다는 말씀이 그것이다. 이들은 전쟁(옳고 그름으로 승패를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라 무리의 규모와 힘으로 제 논리와 다르면 틀린 것이라고 억압하는 것)을 일으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은 것처럼 두 증인도 죽여 버리는 큰 악을 행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증인을 죽였던 무리들로 하여금 저희들이 한 짓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깨닫도록 하셨다. “삼일 반 후에 하나님의 생령이 저희 속에(죽었던) 들어가 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 하더라가 그것이다. 죽임을 당했음에도 다시 살아난 자들이 이에 하늘로 올라가게 되고(하나님과 하나 되는 역사) 짐승(원수)들도 이를 목격하게 된다.

바울이 사울이었던 시절에 스테반을 죽인 사건을 생각해보자. 스테반은 살인자들을 용서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죄를 사해 주실 것을 기도했다. 그러나 스테반은 성령이 충만해지고 하늘이 열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신 것을 보게 된다.(행전7:54-60참조)

증인들은 세상 욕심뿐인 종교인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순간에도 그들을 원망하고 탓하기보다 기도를 올렸다.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이 어찌 자기 신앙의 토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가 지녔던 믿음과 삶의 토대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큰 지진이 난 상황인 것이다.

지진이 일어나 성의 십분의 일이 무너진 것, 7천명이 죽는 사건은 하나님이 받으실 십일조 분량을 의미한도 하겠다. 7천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무엇인가? 왕상 19:14-18에 엘리야가 이제 나만 남았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7천이 남았다고 하신 것, 왕상 20:1-15에  아합이 각 도의 방백의 소년들을 계수하니 이백 삼심이인요 그 외에 모든 백성 곧 이스라엘이 모든 자손을 계수하니 칠천 인이더라고 한 것을 참조해 보자.

7천이라는 숫자는 영적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숫자다. 마태복음 27:51-52절에 묘사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 때,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려 자던 성도들이 많이 일어났다. 이때의 일과 두 증인이 당했던 일을 비교해보면 벌어진 일들의 의미가 또렷해진다. 증인들이 죽임을 당했다가 살아난 사건을 통해 지진이 일어나고 성의 십분의 일(하나님이 받으신 십일조)이 무너졌으며 7천명이 죽는다. 이로써 두 증인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저희의 신앙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게 된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미리 죽으면) 찾으리라하셨다.

또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고 했다. 죽어야 산다는 말이 이토록 절실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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