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후로 (απαρτι ; 아파르티) (계14) - 박승현 목사님
지금 이후로 (απαρτι ; 아파르티)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계14:13)
요한은 하늘에서‘이제부터는 주 안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다가) 죽는 자들이 복된 자들이라’고 기록하라는 소리를 들었고, 성령은‘그 말이 옳도다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저희가 주안에서 주님의 뜻대로 행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선한 일을 행한 자(하나님의 뜻 가운데 형제를 사랑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않게 하는 믿음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전후 참조)고 했다. 세상에서도 오늘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하루를 지냈느냐에 따라 곧 오늘로서 주어질 내일이 달라진다. 죽은 어제가 산 오늘을 좌우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제부터란
이제부터란 언제를 말하는 것인가? 제 안에서 밤낮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참소의 대상이던 그 형제들이 오히려 긍휼히 여겨져 그들에게 하나님의 참뜻과 사랑을, 십자가를 전해주어서 마치 사울이 스테반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된 때이다.
해서 이때를 맞이한 사람들, 즉 시온산의 어린 양과 함께 서 있게 된 ρ.μ.δ.(로뮈델타: 말씀으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가 제 안에 나타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사는 성도, 관용적으로 144,000의 성도)처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가운데 육체의 삶을 마치게 된 사람들은 영생의 부활된 영적 셋째 하늘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십자가를 질 일도 없고 누군가를 위해 수고할 일도 없는 참된 안식과 복됨을 누릴 뿐이다.
육적 세계에서는 육체가 곧 십자가일 수 있으나 영적 세계에서는 육체의 본능에서 벗어날 뿐더러 작고 보잘것없는 것까지 귀하게 여기고 섬기며 감사하는 바, 서로가 서로에게 종노릇 하려는 사랑의 형제, 마음 깊은 곳에서 생명의 샘물이 흘러나오는 믿음이 충만한 사랑의 진리가 된 말씀의 존재들만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살아 있는 육체라도 말씀의 진리로 육체의 본질적인 진노의 성향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놓으면, 육체로 살고 있으되 실상 하늘에 반하는 육체는 죽은 것이므로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사데 교회처럼 신앙이 살아 있다고 일컬어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깨었는데도 자는 척하는 성도, 식물인간이 된 성도)가 된 경우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