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녀가 탄 일곱 머리 열 뿔 짐승 (계17) - 박승현 목사님
음녀가 탄 일곱 머리 열 뿔 짐승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계17:7)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정체는 굳이 해석할 필요도 없이 분명하다.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이고 땅에 거하는 자들(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과 탐심으로 가득 찬 우상숭배자)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하나님의 생명의 사랑의 말씀이 마음판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왕 노릇) 계속하리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계17:8-11)고 상징적으로 그러나 선명하게 밝혀져 있다.
일곱 머리
일곱 머리는 일곱 산이요 일곱 왕이며 다섯은 망했고(지나갔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일곱째)는 아직 이르지 아니했으나 반드시 잠간 동안 밖에는 왕 노릇(살지) 못 할 것이라 하며 여덟째 왕도 일곱 왕들과 동류로서 멸망하고야 만다고 하였다. 성경에서 머리는, 문장의 흐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장로, 원로, 존귀한 자를 가리킨다.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사9:15)했다.
그러므로 음녀가 타고 있는 일곱 머리 열 뿔 짐승은 지혜가 없는 사람이 볼 때는 세상에서 사회적으로 원로나 존귀한 자, 왕 같은 존재이며 산같이 우뚝 솟은 존재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바로 세상의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의 영들을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 시대인 사도 요한의 때에 다섯은 지나갔다. 그리고 여섯 번째가 진행 중이며 일곱 번째가 오지만 얼마 후에는 멸망할 것이며 여덟 번째가 일곱의 동류로서 그 또한 멸망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것은 진리의 계시에 의해 일곱 머리 짐승의 실체가 밝혀지기 때문이다. 일곱 머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남편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다.
요한복음 4장 15절 이후를 보면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가라사대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성령과 진리)으로 예배할지니라”(요4:15-24)고 하였다.
참 남편(장로, 지도자)은 자신의 아내(성도)에게 영생의 샘물이 솟아나도록 하는 진리의 말씀을 넘겨준다. 그리하여 배우는 자가 그 말씀을 마음판에 새겨 자신 내면에 참 남편인 진리의 성령을 모시어 끊임없이 쏟아지는 그 음성을 듣고 따르게 하여야 한다. 또한 그런 존재야말로 하나님의 참 일꾼인데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부활의 존재인 예수 그리스도를 죽었다가 살아난 기적의 존재로만 모신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참 뜻과 무관하게 우상처럼 섬기게 하고 있다.
음녀인 큰 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 기준과 욕심에 따라 우상화하고 참뜻을 저버렸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지면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되고, 이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서 세상 욕심을 이루고자 했던 음녀인 큰 성은 멸망하게 된다. 음녀(큰 성 바벨론)를 신부와 비교해보면 정체를 이해하기 쉽다.
“내(사도 요한)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2)고 하였는데, 그것을 음녀 이야기로 바꿔 표현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내가 보매 가증한 성 옛(새롭게 변화되지 못하여 그릇된 옛 본질상 진노의 성향의 노예가 된) 바벨론이 사단으로부터 땅에서 올라오니 그 예비한 것이 음녀가 남편을 위하여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을 남편에게 먹이고 있더라’고 바꿔 말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음녀는 그릇된 신앙공동체에 속한 중심을 잃은 군중들의 탐심인데, 거기에 부속품 노릇을 하는 개인은 공동체의 사악한 욕심의 희생양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파멸시키는 자가 된다. 그리하여 음녀의 역할에 힘을 보태는 짐승의 생활을 하고 사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짐승에 대한 표현 중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성령이, 하나님의 참 말씀의 존재)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살덩어리, 짐승)가 됨이라”(창6:3)고 한 것이 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없는 사람은 외형을 갖춘 살덩어리일 뿐이고, 그 사람 짐승은 동물 짐승보다 교활하고 욕심 사나운 존재다. 이 짐승은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고 끝없는 욕심을 쫓다가 쓰러지는, 멸망과 부끄러운 영광을 위해 땅의 일만 생각하고 추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또한 음녀가 일곱 머리 짐승을 탔다고 했는데, 다른 표현으로 “또 천사가 말하되 네가 본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계17:15)고 돼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자기 마음과 삶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와 달리 일곱 머리 열 뿔 짐승의 구성체는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위해서라면 영혼의 문제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짐승이다. 또한 이익이 없으면 서로 협력하지 않고 혹여 이익이 된다면 영혼을 파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 집단, 그런 사회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반성 없고 게으른 영혼은 짐승이 되고, 그런 존재들로 구성된 사회는 사랑과 배려 없는 약육강식의 아수라장일 뿐이다. 지옥이 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