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머리 열 뿔과 어린 양 (계17) - 박승현 목사님
일곱 머리 열 뿔과 어린 양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계 17:14)
성경에 나오는 싸움은 어떤 식으로 묘사되든지 영적 싸움을 표현한 것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겉으로 보이는 사람에 대한 싸움이 아니다) 정사(영적 악한 힘의 존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고 했다. 배만 위하는 짐승들은 영혼을 위한 숭고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조롱하고 육체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라 말하며 교만한 마음을 지니고 산다.
한편 눈에 띄지 않아도 영적인 눈에는 보이는 것을 무시할 수 없고 마음의 귀에 들리는 하나님의 소리를 못 들은 척할 수 없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이들은 세상 죄를 탓하기보다 그 죄를 짊어진다는 마음으로, 오직 사랑으로 혼란 그 자체인 세상을 껴안으리라 다짐하며 그런 삶을 천명으로 알고 산다.
이것은 이생 너머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자의 삶이지만, 부끄럽지 않게 이생의 삶을 마치려는, 눈뜬 자의 시한부적인 십자가일 뿐이다. 부끄러운 꿈, 깨면 사라지는 꿈인 줄 알면서도 꿈꾸는 자가 된 이들을 두고 바울 사도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9)고 했다.
세상의 윤리와 도덕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이생 너머의 세계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지금 여기서 올바르게 살려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삶의 목적이 세상의 윤리와 도덕을 지키며 사는 자기의 “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있다.
하나님이 육체를 허락하시고 그 생존을 위해서 혼을 허락하셨으며, 육체의 생존을 위한 혼에 하나님의 영을 영접할 수 있는 사람의 영을 창조하시어 깃들게 하셨다. 육체를 입어야만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정과 인성을 영으로 하여금 혼에 결합시켜 구원하시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이러한 섭리를 인식하는 사람들은 육체의 본성에만 충실한 노예의 삶을 사는 혼적 인간이 될 수 없다.
이들은 영이 인도하는 대로 애써 따르려는 혼을 지니고 이로써 자신의 육체를 쳐서 복종시키기 위해 온힘을 다해 영적 싸움을 해 나간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뽑힌 자, 청한 자 중에 택함을 입은 자)을 얻은 진실한 자들이 바로 이들이며, 어린 양과 함께 이기는 삶을 살게 된다.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자가”(슥12:1)에 나와 있듯이 사람 안에는 육체 너머의 본질적 존재인 영적인 자기 존재가 있다. 이 존재가 육체가 된 혼과 바른 조화를 이루어 영, 혼, 영의 몸을 육신이 끝날 때까지 지녀야 한다. 이것이 사람, 하나님 자녀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