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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야기

내 아버지의 집 (요14) - 박승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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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의 집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요14:2-4)

성경 용어는 물질이 아니라 존재와 상태의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아버지 하나님의 집’이란 용어도 마찬가지이다. 어딘지 모를 우주 어느 곳에 있는 하나님의 집, 낙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9)고 하였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밭이고 집이라는 말씀을 선선히 인정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또한 부인할 수 없는 너무도 분명한 교훈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이요, 밭인 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스스로 이중인격자란 사실을 자복하고 인정해야만 한다. 육체의 인격과 육체 너머의 인격(신격),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영혼 즉, 성령의 소리(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잘 품고 간직하여 성령의 인격이 육체의 인격을 점차 대신해 가야만 한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밭이고 집이다. 하나님 말씀(성령)의 씨를 뿌리고 말씀의 물을 주어 그 열매를 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밭이면서도 밭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간직하고 묵상하여 언제나 신의 성품에 따르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집이면서도 집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였다. 사랑과 온유, 겸손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과 같은 삶을 살기 원하는 당신의 참된 백성,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제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가짐이 예수님의 마음가짐이요 진리의 존재된 이의 마음가짐이다. 비록 지금은 소수일지라도 사랑의 삶을 살짝 엿보기라도 했다면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혼자 힘으로 그렇게 되기는 어려워도 하나님의 손길이 닿으면 그리 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런 삶을 원하고 실제로 그렇게 살게 될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거할 곳=하나님 사랑의 삶으로 살 자세가 된) 예수님 당신께서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실 뿐더러 진정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의 삶을 살 수 있게 도우러 우리들 속에서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시리라 했다.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갈1:16) 하신 것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란 것이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하나님 사랑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자)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하신 말씀이나 혹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고 하신 것도 이러한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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