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본 자 아버지를 보았거늘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14:7∼10)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고 하신 말씀을 두고 참람하다고 했다. 교만의 극치로 보았던 것이다. 겸손이 미덕인 세상에서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이기에 자신을 본 자가 하나님을 본 자라고 말하니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나 천국, 종교적 실체에 대해 사람들이 막연한 환상을 갖고 살아가므로 환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그것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절집에서도 막연히 부처를 찾고 극락을 추구한답시고 부잡스럽게 구는 자들에게는 산 부처도 섬기지 못하는 것들이 죽은 부처를 섬긴답시고 나대냐며 퉁바리를 놓기도 한다. 그러나 산 부처(훌륭한 스승의 길을 가는 자)를 잘 섬기는 자들의 귀의를 받은 사람들 중에는 “중(스승) 섬기고 만나러 오지 말고 진정한 부처를 만나고 섬기”라고 넌지시 일러주는 분이 있다. 옳은 말이다. 좋은 스승을 찾되, 스승에게 매이지 말고 자신의 삶을 한 발자국 내딛으라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로서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이다, 너희가 찾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그 하나님을 너희와 함께하게 하라”는 뜻으로 말씀을 전하신다. 하나님(사랑)을 현실세계로 모셔와 자신의 삶의 근본으로 삼아 살아가라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라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고 악하며 음란함으로 가득 찼기 때문은 아닌가. 하나님을 제 욕심이나 채워줄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을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다
속에서 궁굴리는 생각, 마음속 하나님 아버지는 영이시요(요4:24), 사랑이시요(요일4:8), 명령(εντολη; 엔토레,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거부할 수 없는 소리)이며 영생(ζωη αιωνιος; 조에 아이오니오노, 신의 성품의 삶)이다(요12:50). 그러므로 영이신 하나님이 사랑의 음성으로 끊임없이 사랑의 성품, 신의 성품으로 살아가라 이르시는 소리를 예수님은 항상 듣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있으며 자신은 그 음성대로 자기 몸이 죽기까지 순종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우리에게는 후회하지 않으며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며, 우리는 그분들의 음성을 듣고 그 응원에 힘입어 하나님이 원하시고 우리도 기꺼이 원하는 천국의 일을 하며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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