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 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이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요19:38-42)
아리마대 요셉은 부자였고(마27:57) 또 존귀한 공회원이었다(막15:43). 그는 이러한 신분을 유지하려고 예수님의 사상과 말씀이 옳은 줄을 알고 믿으면서도 이를 숨기고 살던 사람이었다. “관원 중에도 저(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요12:42)한 부분이 그런 실상을 보여준 말씀이다. 이런 요셉이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예수의 시신을 요구한 것은 대단한 용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니고데모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함께 예수의 장례를 위해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약35Kg)쯤 가지고 왔다. 몰약은 시체를 염할 때 방부제와 향료로 쓰이며, 침향 또한 향료로서 몰약과 섞으면 건조제, 방취제 역할을 한다. 유대인의 관원이었던 니고데모는 예수님 사역 초창기에 찾아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거듭남의 비밀”(요3:1-15)에 대해 들었던 적이 있다. 당시 장례풍습으로 향료 백 근을 쓴 것은 왕족의 경우에나 해당되는 것인데, 니고데모가 예수께 그렇게 한 것은 당신을 마음 속에서 진정 하나님의 이들이여 왕으로 모셨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예수의 죽음과 사람들의 태도
“정승집 개 죽은 데는 가도 정승 죽은 데는 안 간다”는 속담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보통사람들의 인심이 아마 그러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그러했다. 한때 당신을 따르던 수많은 군중, 제자들도 예수님의 시신에는 미련이 없었나 보다. 그렇게 돌아가는 인심 속에서도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유대인의 관원 니고데모는 달랐다. 이들은 겉으로는 제자의 무리에 들지 않았고 성경 어느 곳에서든 예수님의 사역에 적극 동참했다는 얘기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마음속으로 예수님의 사상과 행동이 참 하나님의 사상이요 참 하나님의 아들의 행동임을 깊이 공감했던 것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는 말씀처럼 입으로 요란하게 하나님을 말하고 떠벌리는 사람치고 진정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것은 자기 일상생활 속에서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면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러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12:14-18)는 말씀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바를 겉으로 드러낸 적이 없지만, 실은 그분의 삶과 말씀을 마음 깊이 간직했던 사람들인 게 분명하다. 예수님 생전에야 공경과 믿음의 모습을 드러내보이지는 못했지만, 자신들을 참된 삶으로 이끌어준 분의 죽음 앞에서는 차마 그럴 수 없었으리라. 신앙은 일상생활 속에서 매순간 실현되고 나타나는 것이고, 작고 아름다운 그 모습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위하는 것임을 잊지 말고 충실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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