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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이야기

원수를 사랑하라 (마5) - 정광교회 박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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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하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2-44)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를 살펴보자. 사실 원수를 미워하라고 하였다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구약의 레위기 19장 17-18절에 보면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責善 : 친구끼리 착한 일을 서로 권함)하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했다.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고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라는 내용은 있지만 원수를 미워하라는 내용은 없다. 그런데 예수님은 분명히 자신을 쫓아온 무리들에게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고 하신다.

문자는 해석에 따라서 내용이 달라지긴 하지만 성경 문자는 거짓말이 아니다. 성경이 위대한 것은 시대마다 그것을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과 전해짐이 천차만별이었지만 성경의 그 문자가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점에 있다. 성경에는 원수를 미워하라는 글이 없는데도 그 당시 사람들은 원수를 미워해도 된다고 들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눈으로 본 것 외에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렇다고 의심하라는 말은 아니다. 들음의 사건이 사실인지 아닌지 깊이 상고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 어떻게 듣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을 어떻게 듣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자. 모세가 제정한 사회규례 중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레24:17-21)와 같은 법을 '동해보복법'이라고 하는데, 그 법의 제정된 취지를 사람들이 잘못 이해한 것이다. 모세의 법은 처벌이 아니라 범죄예방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동해보복법의 근본 취지가 원수를 미워해도 된다는 쪽으로 해석되고 사람들에게 들려졌다.

'원수를 미워해야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라는 의문을 어느 누구도 하지 않는 시대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 인식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며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원수를 갚지 말라는 수동적 자세에서 원수를 사랑하는 데까지 나아가라 하셨다. 원수를 갚지 말라는 말에는, 마음속에 원수에 대한 원망이 여전히 있고 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기지 말라는 뉘앙스가 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상대를 향한 미움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결국 원수를 사랑하라 함은 자기 안의 평화를 찾기 위함이다. 타인을 미워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사랑할 수 없다. 반대로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진정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것이 진리의 위대한 법칙이다.

하나님의 법, 법 아닌 법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상태로 존재하신다. 내가 어느 누구를 정이나 욕심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사랑할 때를 생각해 보자. 사랑할 대상이 있기에 내가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자기 안에 넘치는 사랑을 상대를 통해 검증하는 것이다. 반대로 누구를 미워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저 사람 정말 밉다고 스스로 생각하겠지만, 실은 자기 안에 사랑이 아닌 미움이 넘치고 있음을 검증하는 것이다. 타인은 자신의 내적 상태를 보여 주는 거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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