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 교회 2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2:5-7)
다른 사람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든 절대자께 스스로를 맡기기로 마음먹고 신앙의 길에 막 들어선 경우든 간에 사랑의 시작 단계에서는 이성보다 감성이 앞선다. 감성이 압도하고 앞서는 시간이 흐른 다음 서로를 알아가는 배움의 과정을 겪어 나가면서 이성이 점차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감성보다 이성을 바탕으로 한 제2의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첫사랑, 제1의 사랑이 뜨겁고 순수하고 달콤하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기를 앞세우기가 쉽다. 해서 상대가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으면 상처를 많이 받는다. 시간이 흐르고 상대를 더 알게 되고 자신도 돌아보게 되는 제2의 사랑의 단계부터는 사랑이 시작된 때 느꼈던 기쁨과 열정은 깊어지고 차분해지면서 앞뒤 가리지 못하던 행동을 자제하게 된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상대에게 맹목적 지배를 당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난, 소위 지적인 사랑 혹은 신앙은 갖게 되었을지언정 진정한 하나님의 뜻과 멀어지고 있는 상황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지적한다. 사랑이 시작되면 상대(사람이든 하나님이든)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시작된 것이라고는 해도 마냥 행복하고 기쁨이 넘친다. 무엇이든 받기보다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마냥 주고 싶은 이 행복과 기쁨은 지속되지 않으며 제풀에 지치고 상처받는다. 또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보상심리가 발동해서 상대가 내게 뭘 주더라도 자기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하기도 한다.
자신과 상대를 다시 알아가는 수고를 통해서 이러한 고비를 잘 넘기게 되면 새로운 사랑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행복, 기쁨과 실망과 고민이 교차하는 이 고비를 넘기면서 상대를 알려고 수고하는 이유는 오로지 내 마음대로 이끄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사랑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주기 위해서이다. 시작할 때의 기쁨만큼 상처(제 헌신에 대한 상대의 미흡한 보상과 그 실망 등)가 클 터인데 이것을 피하는 것만이 상책인가? 사도 요한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대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수단으로서 배움이 편향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니골라당을 미워하는 것에 대한 칭찬
에베소 교회가 배움을 통해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 그것을 나(하나님)도 미워한다고 말씀하신다. 니골라당이라 함은, 순수한 영적 사랑을 위해 복무하지 않는 목회자, 신앙공동체를 말한다. 즉 영적 사랑을 빙자해서 세속적 유익을 구하는 사교단체 같은 신앙공동체와 그 지도자 영혼을 위한다고 말만 하는 “영혼의 마피아” 같은 자를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을 두고 잘 했다고, 칭찬할 만한 것이라고 하지 않은 것도 알아야 한다. 에베소 교인이 하나님의 지식을 배우지 않았다면 니골라당을 미워하기는커녕 같은 무리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뜻을 모른다고 해도 욕심 때문에 종교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니골라당에게 휘둘리거나 이용 당하지 않을 것이다. 욕심이 많은 자가 사기를 당하기 쉬운 이치다.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외쳤던 아이가 악의를 갖고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순수한 마음 앞에 허위와 위선이 저절로 드러난 것이다. 사기꾼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신앙을 배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니골라당이 나쁜 당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배우고, 배운 다음 니골라당을 미워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배우지 못해 니골라당이 나쁜지는 모를지라도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영혼을 지켜 간직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그들의 행위를 결코 따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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