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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서머나 교회 (계2) - 박승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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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 교회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2:8-9)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는 육체를 가지고 인간 세상에 사셨던 예수의 속사람을 가리킨다. 이분이 서머나 교인들에게 신앙과 성경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되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편지를 보내 주신 것이다. 또한 당신께서는 유대인들에게도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詳考)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εχω 에코, 내면에-영생이라는 신의 성품이-소유되어진 것)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5:39-40)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처럼 자기 기준으로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고 있다는 확신에 빠진 자는 의심이 없으므로 마음은 편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나가는 데 있어 이는 의미 없는 일일 뿐.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기 신앙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디딜 필요는 절실한 것이다. 신학자 볼테르가 얘기한 의심은 불편한 것이지만 확신은 어리석은 것이다라는 말을 한번 떠올리면서 말이다.

네 환난과 궁핍을 알지만 실상은 부요한 자니라

신앙이 바람직하게 성장하면 스스로 의인 의식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배우고 익힐수록 부족한 것이 뼈저리게 느껴질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제 역량과 수준만큼만 하면 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릇되지 않은 선한 욕심이 제 부족함을 또렷하게 만들어 스스로 힘들게 만든다. 선한 욕심도 욕심일 뿐이다. 인자께서 그것을 알고 네가 느끼는 환난과 가난(부족함) 때문에 스스로 힘들어 하는 것을 알지만 너는 네 맡은 바 역할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너무 힘들어 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시는 것이다.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지나치면 사단의 책략에 빠져들 수 있다. 자기의 부족한 부분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채워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면 그뿐이다. 하나님을 배우고 그 뜻을 자기 삶 속에서 실천하고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결국 당신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삶의 현실 속에서 참으로 보잘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자학하는 것은 곧 자신을 과대평가해서 오는 현상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자칭 유대인

성경에서 유대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그래서 예수님도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4:22)고 했다. 그러나 유대인이란 말씀을 육적 혈통이 아니라 영적 의미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성령에 있는 것이지 의문(문자)에 있지 아니한 것이다”(2:28-29)라고 했다. 이때의 유대인은 기독교인 더 나아가 종교인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한 치의 의심 없이 이를 확신하는 사람들이 제 믿음을 주장하고 강요하면서 너희(서머나)를 힘들게 했으므로 실상은 이들이 유대인이 아니라 사단의 회라고 하신다. 제 신앙의 신념을 고집하는 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타인에게 강요하고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고 했다. 자신의 생각과 의식의 흐름, 말하는 것, 행동 등을 객관적 시선으로 관찰하고 점검하면서 조심스럽게 살아가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자기 신앙의 신념이 세상을 찌르는 사단의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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