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요5:30-36)
산(山)이 모든 사람의 소리를 들은 그대로 메아리로 되돌려주듯이 의로운 심판자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고 듣는 대로 심판하신다고 하신다.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는 심판은 심판하는 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그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그 말로 (쌓은 악에서 나오는)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12:35 -37)하였다.
좋은 나무, 좋은 실과를 내는 나무는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되는 것이 의로운 심판이고 좋지 못한 나무, 좋은 실과를 내놓지 못하는 나무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된다. 악을 선하다 할 수 없고 선을 악하다 할 수 없는 심판자가 의로운 심판자이다.
나는 나를 위해 증거하지 않는다
요한은 진리에 대하여 증거를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고 또한 증거를 증명하고자 시도도 하지 않으셨다. 다만 이러한 말을 해주는 것은 이 말을 듣고 그 뜻을 알아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구원을 얻게 해주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내가 진리다”(요14:6)라고 하셨다. 진리자가 말한 진리에 이른 말은 있으나 말이 진리는 아니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는 말이 같은 표현일 것이다. 진리자가 말하는 것은 진리의 존재가 되게 하기 위한 방편이라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 편들거나 증거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으나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다고 하신다. 아버지께서 예수께 주사 이루게 하는 역사 곧 예수가 하는 그 모든 일들이 증거라 하였다.
진리의 증거는 말이 아니라 삶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니라” (히13:7-8)하였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다(고전12:4) 했다. 성령은 진리이기 때문에 (요일5:7) 같지만 은사는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발의 역할을 하는 진리자가 있고 손의 역할을 하는 진리자가 있다.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가는 것은 진리의 복제이지 진리자가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은사에 맞는 진리자가 되면 진리를 증거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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