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있는 삶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5:26-27)
일반적으로 생명이 있는 것이 삶이요,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살아난 자들 속에 진정한 생명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때의 음성은 막연한 음성이 아니라 타인을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 생명이란 육체의 생존 기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곧 호흡의 유무가 아니라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를 말하는 것이다. 살아난 자,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 부활된 자,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존재는 짐승처럼 자기 육체만을 위한 본능의 삶을 사는 자가 아니다. 타인을 자신의 일부처럼, 더 나아가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생명이 있는 자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이 있으면 하나님이 있는 것이요 사랑이 없으면 짐승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 짐승은 신의 가면을 쓰고 신의 말을 할지라도 속셈은 세상 것에 있다. 그 스스로 속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 짐승의 첫째 특징은 돈으로 행복을 사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돈으로는 한 때의 쾌락과 편리를 살 수 있을 뿐이다. 행복 속에는 쾌락과 편리가 포함될 수 있으나 그것이 행복은 아니다. 둘째로 지위로 행복을 사려하지만 지위 또한 한 때의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로 명예로 행복을 사려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명예로 누릴 수 있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한 때의 허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생명, 사랑, 행복은 같은 의미를 가진 다른 언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심판하는 권세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하는 권세는 하나님의 말씀과 심정이 자신 속에서 스스로 판사 노릇 하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요8:15-16),
또한“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버리고 내 말을 믿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요12:47-50)하셨다.
인자이신 예수님도 말씀으로 타인을 심판하기에 앞서 자신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며 긍휼의 삶을 사셨다.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라고 하였듯이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받은 자가 심판하는 권세자가 된다. 그러나 그 권세는 타인을 심판하지 아니하는 권세를 말함이다. 내 속의 말씀이 나를 판단하듯 내 속의 하나님의 말씀을 타인에게 전해서 그 말씀이 곧 그들의 판단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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