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영생, 영원이라는 헬라어는 아이오니오스 (αιωνιος)인데 이 단어는 시간의 영원성의 의미보다 신의 존재성에 의미가 있다. 보여지는 물질적 존재는 시간의 영원성에 의미를 둘지 모르겠으나 신은 시간의 제한에 갇혀 있지 않다. 신의 세계 즉, 하나님의 세계에서 시간의 영원성에 의미를 두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헬라어 아이오니오스는 “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과 합하여 하나님과 한 “영”이 된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과 같은 신성을 지니고 신성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되어진 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성부 하나님의 존재, 즉 사랑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4:8) 믿으므로 하나님과 같은 사랑의 존재가 되어졌을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영생”의 존재가 되어지는 것이다. 곧 영생을 얻었다고 표현한다.
사랑나무
사랑의 존재의 상태가 영원, 영생인데 이것을 나무로 비유하면 영원 혹은 영생의 상태를 누리고 있는 나무를 통해서 다른 나무가 혜택을 보게 되었을 때 사랑 나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사랑 나무로 불리울 지라도 정작 자신은 영원 영생의 지복감(至福感)을 느끼고 살 뿐이다.
사랑 혹은 영생 나무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 내 아버지는 농부 -요15:1-5참조) 사랑의 열매, 영생의 열매,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있는데 그중에 몇 가지 열매를 글로 표현하면 첫째는 사랑의 열매이다. 이것은 애착이나 집착이 아니다. 또한 특정인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모든 이에 대한 행복, 기쁨, 평화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 향기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르시되 하나님께서는 해와 비를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지 않고 자기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편견 없이 비추시고 내리신다 하신 것을 통해서 그 마음을 엿볼 수 있다.(마5장 참조)
둘째는 모든 존재하는 자의 고통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다. 이것을 야고보 장로는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약2:13)했다. 다른 이의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함께 느끼며 사랑하는 것이 자비의 열매다.
셋째는 희락의 열매이다. 개인 자신의 기쁨은 타인을 배려하여 절제하는 지혜를 활용하지만 다른 이의 행복과 기쁨을 보고서는 시기나 질투가 아닌 더불어 같이 누리는 기쁨이 있다.
넷째는 평안이라는 열매다. 몸의 상태나 삶의 조건에 따라 마음의 변덕을 부리지 않고 기쁨과 슬픔, 자비와 성냄이 여름 날씨처럼 변화무쌍하지 않고 또 상대의 반응과 무관하게 흔들리지 않는 늘 균형 잡힌 고른 마음의 상태를 말하며 이것을 하나님과 화목했다고 표현할 수 있다.
다섯째는 온유의 열매인데 존경할 자를 존경하고 존경할만하지 못한 자는 무례하지 않은 가운데 바로잡는 수고를 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사는 것을 말한다. 이외에도 많은 열매가 있으나 그것이 사랑 나무, 사랑 열매의 다양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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