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팔 년 된 병자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날은 안식일이니 ……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요5:1-14)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 베데스다(자비의집)라는 간헐천이 있는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곳에 가면 천사의 도움으로 병이 낫는다는 소문에 의해 많은 병자와 혈기 마른 자들이 있었다. 그중에 삼십팔 년 된 병자에게 예수님께서 관심을 보이시며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신다.
원문에 병은 ασδενεια(아스테네이아; 연약함)로 되어 있는데 몸과 마음이 약함, 도덕적 연약함을 뜻한다. 단시간에 죽음에 이르는 심각한 병은 아닐지라도 오랜 시간 동안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다. 삼십팔 년 된 병자와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을 통해서 보면 어떠한 것을 이루고자 하는 집념을 죽기까지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열매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더 주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끊임없이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한다고 하신다 (눅18:1).
선한 자의 바램과 기도인지 악한 자의 바램과 기도인지 그것은 중요치 않다. 선한 것과 악한 것의 구분은 다소 주관적이므로 쉽게 단정해 나눌 수 없다. 다만 기도하는 자는 그렇지 않은 자보다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하는 것이 이루어 졌다고 할지라도 그 후 삶의 모습이 아름다움으로 발전되지 못하면 기도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여기 삼십팔 년 된 병자에게 병이 낫는 것은 매우 절실했다. 절실한 자는 영적 세계와 현실 세계에서 소망을 맛볼 수 있는 은혜를 더 제공 받는다. 그러나 그 절실함의 결과가 손에 쥐어졌을 때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 생각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병을 고쳐주신 후 그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신 것을 보면 그 병자의 병의 원인이 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병자는 단지 병이 낫기만을 원하였다고 볼 때 예수님께서는 병보다는 그 원인인 죄의 단절이 필요함을 그에게 말해준 것이다. 병이 낫기를 원하는 그 간절한 마음을 가진 것을 보시고 먼저 그의 병을 낫게 해주시고 단서 조항으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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