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이에 저희가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요8:19)
영적이야기는 주관적이며 비가시적이고 내면적인 것이다. 영적인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유대인들이 ‘예수야 네 아버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예수님께 묻는다. 묻는 그들도 하나님이 “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다만 창세기부터 하나님이 영적 존재인 것을 드러내어 주고 있는데 듣기는 들어도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단정 지어 들으므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신다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성령)과 진정(진리)으로 예배할지니라” (요4:24)고 하셨다. 그러나 “영”은 신앙과 종교적 개념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있으나 객관적이고 세속적 개념으로 볼 때에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 해결책으로 예수님께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영혼이 살아있는 삶)이라” (6:63)고 하셨다. 여기에서 살리는 것은 형제와 세상 모든 이를 사랑함으로 영혼(마음)이 따뜻해지는 상태를 말한다. (요5:24, 요일3:14참조).
영이 극히 주관적이나 입을 벌려 누군가에게 넘어갈 때는 자신 안에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의 밀어(密語)들이 상대에게도 차곡차곡 쌓여서 어떠한 형편 상황에서도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에게 덕을 끼치는 삶과 언어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이 일반적으로 도덕, 철학, 시어(詩語)와 다른 것은 그런 아름답고 복된 생각의 주체가 자신의 지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 안에 자신이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존재의 힘이 지속적으로 역사하는 것을 그 본인만 이 안다.
그러므로 영이란 객관적으로는 아름답고 복된 생각으로 자신과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또 주관적으로는 바울의 표현처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 하신 것이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가 명백히 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모르는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은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들 안에는 자신도 행복하고 타인도 더불어 행복하게 하는 하나님의 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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