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10:11)
예수께서는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19:17)고 말씀 하셨다. 세상에서의 선은 상대적 선일 수도 있겠으나 성경에서의 선은 상대적 선이 아니다. 그 선은 선과 악으로 구분되어질 수 없는 선이며, 굳이 말하자면 “사랑”이 선이다.
사랑은 나와 다름을 인정할 뿐 아니라 존중하며 영혼의 풍성함을 위해 소통(疏通) 즉, 사랑의 교제를 적극 모색해 나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라 양들을 위해 산다고 표현 하였지만 표현이 제대로 된 것은 아니다. 만일 양들을 위해서만 산다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처럼”의 내용과 모순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진정성을 드러내고자함이 아니라 양들에게 좋은 길을 제시하기 위해서 적극적 표현을 하신 것이다. 평상시 표현이라면 “나는 내 삶을 위해 양들을 이용하지 않는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예수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양들을 위해서 적극적인 표현을 한 것이다.
바울 사도는“ …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노라 …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 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불의) 것을 용서하라”(고후12:11-13) 고 하였다.
바울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세상 누구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산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도 어쩔 수 없이 양(성도)들을 바로 인도하기 위해 자신이 바른 인도자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솔직하게 말해서 정말 바르다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저 그른 길을 가지 않는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바른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따라 끊임없이 바르게 걷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왜냐하면 섰다고 생각하면 넘어진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양들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내가 선한 목자라고 외칠 수 있는 뱀의 지혜가 필요하기도 하다.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의 말씀은 얼핏 보면 예수님 자신에 의해 모순될 때가 있는데 그것은 겉으로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 말씀을 하는 상대의 수준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19:16-17)고 말씀하셨다.
같은 내용으로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눅18:18-19)고 하신 것처럼 예수 자신은 선한 분이 아니라고 하였다. 예수님 앞에서 묻는 자와 듣는 자의 영적 수준과 상태가 다르므로 다르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생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님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말해 보았자 소경에게 빛과 색깔을 설명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므로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이라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요한복음에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다. 이같이 모순되는 이야기가 또 있는데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3:17) 되어있고,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을 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요9:39)라고 되어있다. 한쪽에는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하고 다른 쪽에는 심판하러 왔다고 하신다. 그것은 모순이 아니라 진실이다. 자신이 소경이요, 죄인이요, 병이 든 것을 아는 자들은 구원하러 오신 것이고 모르는 자들은 심판(평가, 판단)하러 오신 것이다.
영생은 일의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와지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하나님과 연합된 존재가 되어지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내가 선한 목자”라고 하신 것은 예수 앞에 있는 자가 눈을 뜬 자요 귓문이 열린 자이므로 ‘내 속에서 샘솟아 나오는 성령의 샘물을, 질 좋은 목초를 맘껏 먹고 마셔서 너희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명령이 영생인줄 알아 순종하게 되는 내면적 의지를 은혜로 받아들이게 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 하나님의 명령(엔토레εντολη, 요12:50) :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궁극의 힘(아르케αρχη, 요일2:24)이 살아서 자기 내면에서 움직이면서 들려오는 성령의 말씀
'요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요10) - 박승현 목사님 (0) | 2017.04.08 |
---|---|
선한 목자와 삯군 목자 (요10) - 박승현 목사님 (0) | 2017.04.08 |
나는 양의 문이라 (요10) - 박승현 목사님 (0) | 2017.04.08 |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요10) - 박승현 목사님 (0) | 2017.04.08 |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리라 (요9) - 박승현 목사님 (0) | 2017.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