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랑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3-14)
친구(φιλοζ; 필로스, 사랑하는 사람,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했는데, 자기 목숨을 버린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구제(救濟)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3)고 했다. 그러므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과 아무 유익 없이 몸을 불사르는 데 내어 주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ψυχη; 푸시케, 목숨)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고 하셨다. 몸과 영혼, 몸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을 구별하여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큰 사랑을 두고 이미 말씀하셨다.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하신 말씀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그리스도, 친구(요한복음에서 말한)]를 위하여 목숨을 잃은 자는 얻으리라”(마10:38-39)는 말씀,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는 말씀을 연결해보면 알 수 있다.
친구란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친구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는 자”라고 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의 ‘명’을 받든 자는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이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자기 영혼이 추구하고자 했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는 진정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죽은 영혼으로 산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바울은 “무릇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6:3-7)고 했다.
세속의 정과 욕심을 나누면서 같이 웃는 사람이 친구인가? 예수님 앞에 나란히 손잡고 서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친구일까?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진정한 친구 노릇하기도 어렵거니와 예수님의 말씀과 친구 되는 길은 참 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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