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한 기도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요17:9-10)
이 말씀은, 예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던 것은 분명하지만 모든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랑의 열정을 쏟을 수 없었기에 하나님이 보내주신 자(참된 영혼을 위한 삶을 살고자 하는 자)들을 위하여 빌고 빌었다는 고백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내주신 자가 아닌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 밖에 있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보내주신 자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그런 삶의 혜택을 보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을 위해 빌고 빌면서 하나님의 참사랑을 전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하여 하나님과 하나됨을 인식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 당신처럼 참스승과 참된 상전(어른)의 심정, 삶을 살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저희(하나님 뜻을 찾아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세상을 살 때 세속적 탐심의 사람과는 달리 아름다운 영혼의 흔적을 간직하고 살면서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흔적을 남기는 삶을 산다면 그 삶은 덧없고 무의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이를 두고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6:14-17)고 했다. 예수의 흔적을 지녔으니 세상의 물질과 명예,권세 따위는 십자가에 못박고 그저 예수님이 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가리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영광은 말하자면 당신과 같은 삶을 살게 된 바울 같은 존재인 것이다.
바울은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 παρουδια; 파루시아, 돌아오다(comeback)의 의미도 있으나 성경 전체로 볼 때 나타내다(appear)]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살전2:19)라고 긍지를 보이면서 예수님의 현존성, 그가 우리들 가운데 살아 계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 곁을 한 번도 떠나신 적이 없다는 믿음이다.
그 내용이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는 대목에 잘 나타나 있고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14:21-23) 하신 대목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이 서로에게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참뜻임을 깨닫자. 서로 상대의 눈앞을 밝혀주는 등불처럼 빛나는 삶, 끝내 서로 사랑하는 마땅한 삶을 살자. 눈밭 위를 걸으며 뒤에 올 사람을 위해 발자국을 남겨놓는 마음씨처럼 각자 영혼에 아름다운 흔적을 담고 향기롭고 은혜로운 삶을 살기를 기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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