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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야기

창세 전 영화를 (요17) - 박승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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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 전 영화를

“아버지께서 내가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요17:4-6)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살아내므로 당신을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올바르게, 참 사랑이신 하나님을 나타내게) 하였으니 창세 전에 내가 당신과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의 나를 영화롭게 해 달라는 말을 살펴보자. 이는 종교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다. 우선 창세 전이란 우주를 창조하기 전이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겠지만 예수 자신이 육체를 입기 전에 영으로만 존재할 때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육체 이전의 영’ 같은 이야기는 과하게 종교적이고 추상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 우선 우리의 현실에 비춰 바라보자. 육체와 관계 없는 마음은 항상 영화로운 상태이지만 육체가 부딪치는 상황에 따라 마음이 영화로운 상태에서 변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셔서 육체가 처한 상황이나 내 마음의 법이 곤고한 사망의 몸과는 관계 없이 하나님의 법을 섬기며 따를 수 있도록 해주시고 또 저희 또한 그렇게 살게 해주십사 하는 말씀이다.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이란 누구인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απολλυμι; 아폴뤼미, 죽다, 영혼이 파괴되다)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7-39) 혹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6:44) 같은 말씀을 통해 그 정체를 알 수 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자들, 세속적인 것만으로는 마음의 빈 곳을 채울 수 없는 자들이 그들인 것이다.

평화롭고 안락한 때에는 이러한 자들을 알아볼 수 없다. 어렵고 힘들 때, 주리고 매를 맞을 때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의 존재) 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8:11)는 말씀에서 ‘기근’이야말로 예수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알아보게 하는 열쇠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영적 기근, 타오르는 상사병 같은 기근은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치유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세상사람 중에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우리로 하여금 기근에 맞닥뜨리도록 하신 것이다.

이러한 기근을 만난 자는 하늘 떡을 가진 자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하늘의 고귀한 양식이며 영혼의 허기를 채워줄 떡이 된 예수 그리스도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는 말씀으로 당신 바로 그런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셨다. 육의 만나(떡)가 아닌 영혼의 만나를 찾는 자들을 하늘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혼의 허기를 채우며 그 향기를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 즉 영생을 지키며 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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