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롯 유다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마27:3-5)
가롯(ιsκaριωθ ; 이스카리옷) 지역은 이스라엘 영토 밖으로서 구약에서는 한 번 언급된 적이 있고, 예수님 시대에는 히브리인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카리옷 사람 유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되지만, 거기에 더하여 그 이스카리옷이 시카리(단도, 단검)란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유다가 무력투쟁을 통해서라도 이스라엘 왕국을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열심당 소속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 것이다.
유다가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판 뒤에 당신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받았던 것을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도로 가져다주고 뉘우쳐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또 사도행전에는 “유다가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행1:18-26)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유다가 뉘우쳐(µetaµeλοµaι ; 메타멜로마이, 후회하다) 자살한 것은, 어찌 보면 회개(µetaνοeω ; 메타노에오, 뉘우치다, 생각의 관점을 바꾸다,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염치없이 들어가다)의 다른 면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실은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유다의 자살에 대한 앞서의 견해로 돌아가 보자.
유다는 가롯이라는 말에 포함된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스라엘을 독립을 주장하는 열심당원, 지금으로 말하면 열혈 독립운동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스라엘 대중의 호응을 받고 있는 예수를 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 삼으려고 열심히 섬기고 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스라엘 독립과는 관계없는 언행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십자가에서 힘없이 돌아가시게 되고, 가롯 유다 자신이 계획했던 이스라엘 독립과 다윗 왕국의 재건을 실현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 셈이 되고 만다. 이것이 자살의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예수를 판 잘못에 대한 처절한 자기반성 끝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살 자체는 어떠한 경우에도 칭찬받을 일은 아니지만, 자살이 제 욕심이 실현되기 어려워서 그랬던 것인지 육체 안에서 일어나는 병적인 심리현상 때문에 벌어진 일인지 살펴볼 일이다.
성경은 유다가 제 곳으로 갔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모든 자살의 원인이나 배경을 한 가지로 판단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다.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면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유다서 1:9)이라고 했다. 판단은 하나님의 몫이지 사람의 것이 아닌 것이다. 또한 우리 주변에 자살한 사람이 있을지라도 뒤에 남은 가족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에게 상처가 되는 섣부른 말은 삼가야 하고 대신 위로하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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