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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풀이

새 하늘과 새 땅 - 정광교회 박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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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늘과 새 땅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21:1)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마5:34-35)라고 했다.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을 말하는데, 당신께서는 무소부재하시기에 실제로 하늘 아닌 곳은 없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창1:1)”는 말씀은 무엇인가?   땅이 혼돈스럽고 공허하며 흑암(호쉐크 ; 어둠, 무지, 사망)만 있었는데 하나님의 성령이 수면(물의 존재) 위에 운행(라하프 ; 닭이 알을 품듯이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를 품고 계신다는 뜻.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은 당신 말씀의 섭리를 함유하고 있다는 뜻)하고 있다고 하였다.

히브리 단어로 ‘물’은 “마임”인데, 성경에서 말하는 물에는 마시는 물, 성령, 말씀, 사람들 등 다양한 뜻이 있다. 창1:2절 수면 위에 운행하셨다는 것은 물들의 존재(계17:15, 백성, 무리, 열국, 방언)를 품고 있었고 그들을 완성된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 흑암뿐인 에레츠(헬라어로는 코스모스와 게, 즉 우주와 지구, 세상사람 사는 곳)에 빛이 된 당신을 계시하여 주신 것을 말한다.

어둠에서 낮을 분리해놓으시고 어둠은 밤, 빛은 낮이라 했다. 그것을 두고 바울은 살전 5:1에서 그리스도가 파루시아 된 사람들은 빛의 아들이고 낮의 아들이라 했다. 히브리 사람들의 사고방식에서 아들이란 개념에는 ‘속성을 닮은 이’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믿음 안에서 참 아들된 디모데에게 편지 하노니…”(딤전 1:12), “아들 디모데야…”(딤전 1:18),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3:26)라고 표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이나 사도, 믿음의 선진들의 속성을 가진 사람들을 아들이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야고보 장로도 “그가(하나님)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1:18)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빛과 어둠을 사람들에게 설명하시려고 넷째 날에 해와 달을 만드셨다. 그 전에 둘째 날에는 궁창 아래의 물과 위의 물을 나누시고 그것을 하늘이라 칭하셨다. 위의 물은 진리요, 성령이요, 사랑이요, 땅의 필요를 따라 자신을 비로 내려 생명을 전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설명하시길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7-39)고 했다.

또한 계시록 4:6에서는 윗물을 수정 같은 유리바다 즉 투명하여 겉과 속이 일치하는 물이 된 존재들이 하나 되어 존재하는 바다라고 표현했다. 아랫물의 세계, 땅에서는 진리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해도 한계가 있다. 바울의 말처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육체는 시도 때도 없이 죄의 법을 섬기는 불투명한 바다, 죄로 오염된 존재들이 판을 치는 사망의 바다라고 비교하여 수정 같은 유리바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렇듯 육체를 가진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위의 물을 설명하기 위해 아랫물을 땅에 주셨는데, 윗물을 알고 나면 아랫물은 버려져야 한다. 아랫물은 위의 물을 설명하는 지식이요 율법이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알기 전 보물처럼 여겼던 지식을 그리스도를 알고 난 뒤에 똥이라고 여기고 버렸다” (빌3:8)고 한 말의 뜻이 거기 있다.    

윗물을 알게 하려고 하늘 궁창을 만들어서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세계를 알게 해주시는 은혜를 베푸셨다. 아랫물이 땅에 덮여 있으면, 다시 말해 지식이 진리인 줄 알면 땅에서는 아무런 생명의 싹이 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셋째 날에 땅에서 물을 한곳으로 모아 바다라고 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바다는 진리를 설명하는 지식 쓰레기 무덤을 뜻한다. 그러한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들은 꼬리로 힘을 내며 산다. 그 꼬리는 “거짓(욕심을 부추기는)을 가르치는 선지자”와 그러한 가르침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와 같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들은 말씀의 그물로 낚시를 하고 예수는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신 것이다.

다섯째 날은 물에 생물이 번성케 하고 그 중 큰 바다 짐승(용, 뱀, 거짓 선지자)도 있게 했으며 하늘에는 새를 풀어놓으셔서 둘째 날의 의미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시청각교재로 삼으셨다. 롬8:24에 “믿음, 소망은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이는 것 자체에만 빠져드는 우를 범한다.

여섯째 날에 땅에는 씨 맺는 채소와 과목으로 가득 차게 해서 셋째 날의 시청각교재로 삼으시면서 창조의 결정체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속성과 삶의 모습)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본성의 씨앗만으로 창조하시고 모양을 따르게 만드신 것은 이 창조물의 육신을 입은 삶의 현장에서 발아시키고 자라게 하여 열매 맺게 하셔서 구원을 완성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사람을 흙으로 빚으시고 코에 생기(성령 말씀)를 넣어주신다. 이사야 43장 21절에는 “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함이니라”(사43:21)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제 안에 그리스도가 있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도록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열심인 삶을 사는 것만 원하는 게 아니라 연합된 삶을 살기를 바라신 것이다.

또한 야고보 장로는 “사람들이 혀를 가지고 주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하면서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을 저주하는데 그것은 마땅치 않다”(약3:10)고 했다. 여기서 사람을 저주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배우고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율법의 열심만을 내도록 하여 거기 갇히게 만들고 우상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바울은 “율법의 행위에 속하여 있는 자는 저주 아래 있나니”(갈3:10)라고 말하였다.

구원에 이르도록 야차르로써 그리스도를 담을 수 있는 겉사람을 만드시고 그 안에 그리스도가 파루시아 되어 그리스도로 옷 입은 그리스도의 신부된 존재로 완성 시킨다. 예수님이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않겠느냐”(눅11:40)고 하신 말씀이 그것이고, 바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한다”(빌1:6)고 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138억 년이지만 카이노스의 영적 시간은 하루일 뿐이다. 그것을 베드로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은 하나님의 세계의 이치를 알라”(벧후3:8)고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구원된 사람들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인 새(카이노스) 하늘과 새 땅에서, 처음 하늘과 처음 땅(크로노스의 하늘과 땅), 처음 바다가 있지 않고 밤도 없이 오직 빛 된 생명만 있는 곳에서 하나님과 연합된 사랑의 존재들과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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