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되어 오신 예수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14)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창조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관점으로 해석하여 윤리 도덕적 한계를 갖고 살 것을 아시고 창세 전에 이미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려고 준비하셨다.
마15:1~9절에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라고 했다. 또한 벧전 1:20~21절에는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해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고 하셨다. 윤리 도덕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뜻은 윤리 도덕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윤리 도덕은 자신의 의를 나타내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자칫 우월감을 드러내는 데 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가득히 채우고 살고자 해도 실제 삶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내기 쉽지 않다. 인간은 제 뜻을 이루려고 본능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육체의 본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가 없는 가여운 존재다. 육체의 본성을 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가득히 채워 그에 따라 살기를 소원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또다른 세상, 곧 영적 세상이 있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그러한 세상을 육체의 본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지금 여기에 세우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좌절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그 불가능의 영적 세상은 사람이 세울 수 없으되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당연하게도 하나님은 우리들이 당신의 은혜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소망을 지니고 열망하며 사는 것을 기뻐하셨다. 이러한 소식을 복음이라고 하고,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한다.
마19:24-26절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를 되새기라. 롬1:16절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이 오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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