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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바람직한 믿음을 가진 버가모 교회가 책망 받을 일(계2) - 박승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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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믿음을 가진 버가모 교회가 책망 받을 일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2:14-15)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은 누구인가? 민수기 22-25장과 318, 16절에 발람에 관한 내용이 있다. 발람은 당시 유명했던 메소포타미아의 점술가였다. 모압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그를 사주했으나 하나님의 살아 계신 힘을 느꼈던 발람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듯 머리로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인 하나님의 세계를 인식했음에도 모압왕 발락이 던지는 물질의 유혹을 견디지 못했다. 해서 모압 여인들을 이용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음행을 유도하고 우상숭배를 하도록 만든 모략꾼이 되고 만 것이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 인자가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버가모 신앙공동체 안에도 머리와 입술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따르지만 마음속으로는 세상 왕(모압)의 물질 유혹에 넘어져 음란과 탐심의 노예로 사는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AD29년경)에 바리새인을 두고도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15:7-8)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바리새인과 버가모 교인만 그런가?

우리는 물질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이 땅을 딛고선 우리 육체를 영혼의 풍요로움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사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아니하다. 물질은 우리의 마음을 풍요로운 사랑으로 채우는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을 갉아먹고 궁핍하게 만드는 물질은 육체의 쾌락 도구일 뿐이다. 육체가 영혼을 담은 그릇이란 것을 모르거나 모른 체하고 사는 삶은 진정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 땅에 묻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일 뿐 그저 움직이고 숨쉬는 시체일 뿐이다.

 니골라당

니골라당 기원에 관한 학설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에게서 찾는다. 이 사람은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하나이다(6:5). 후에 율법폐지론의 기수가 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율법은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야 하므로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므로 율법에 매이지 않을 뿐 없앨 것이 아니다. 율법의 행동이 사랑에 의해 자연스럽게 행해져야 하는 것인데, 잘못 알면 율법을 폐하는 것이 옳은 줄로 착각하게 된다.

두 번째는 어원을 따지는 학설이다. 니골라당의 창시자 니콜라우스의 이름이 백성을 뜻하는 라오스와 정복하다는 뜻의 나카오’ 의 합성어라는 것이다. 잘못되고 부도덕한 가르침으로 백성들, 세상을 오염시켰다는 뜻일까? 즉 이 세상에 선한 것이라고는 영혼뿐 육체는 악하기에 더러운 육체로는 무슨 짓을 해도 무죄하다거나 혹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에(8:1) 어디서 무엇을 하든 죄가 되지 않는다는 그릇된 생각을 퍼뜨려 음란과 탐심을 조장하는 무리였다는 설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은 옳으나 무슨 죄를 지어도 정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육체의 정욕을 좇지 않고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를 넘어선 존재들이다.  정죄 받을 삶을 사는 사람들조차 긍휼히 여기고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 정죄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확신을 담보로 죄를 짓는 사람은 바보다. 그런데 이런 바보가 세상에 넘치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심판의 유무와 관계 없이 하나님 사랑의 성령에 의해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한 심판과 정죄의 마음 없이 살게 되는 기쁨과 평안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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