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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계3) - 박승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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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3:10)

 

신앙의 삶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다고 원하기만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배워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배운다는 것은, 그렇게 살고 싶다고 온 마음으로 원해 그것이 실제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하는 인내와 환난, 단련(훈련)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수단, 방편, 첫걸음일 뿐이다.

악기를 다루어 감동을 주는 음악을 연주하려면 연주자는 오랜 시간 고민하고 피나는 반복훈련을 거듭해야 한다. 신앙 혹은 진리에 대한 교훈의 말씀을 머리로 익히고 배우는 것은 악기를 다루기는커녕 훌륭한 연주를 편안히 앉아 그저 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훌륭한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감각도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연주의 즐거움을 맛보려면 연주에 필요한 재능이 부족할지라도 어쨌든 악기를 잘 다룰 수 있게 되기까지 수고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과정 자체도 사랑해야 한다. 음악은 연주에 필요한 악기가 따로 있지만, 신앙과 진리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육체가 악기이다. 머리로 이해하고 배운 것을 육체의 삶을 사는 동안 쉬지 않고 반복하면서 의식적 훈련을 거듭해 나가는 가운데 배운 대로 살기 어려운 그 환난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기 때문에 당신 말씀을 듣고 배우게 하신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그럴 능력이 없었다면 듣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배움, 즉 듣는 것만이 목적인 사람은 들을 수 있는 자격이 진리인줄 착각하고 거기서 발걸음을 멈출 수도 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3:7)고 일렀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대개 몸에 배인 습관으로 채워진다. 매순간 사태를 분석하고 준비된 말과 행동으로 대응하는 경우는 사실 아주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몸에 스며들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험(욕심에 끌리는 것)은 무의식에서 온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 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1:13-14).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보기 전에야 제 속에 그런 마음이 있는 줄도 모르겠지만 그것들과 부닥친 순간 제 속에서 욕심이 스멀거리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욕심은 의식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몸이 기억하는 무의식 속에 존재하다가 방심하면 튀어나온다. 그래서 인내, 환난, 훈련의 과정을 거친 사람들은 시험을 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제 살아가는 길에 인내하고 그것을 육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를 만나든, 그 무엇을 보든 시험 받지 않으리라. 멀고 아득한 길 앞에 서 있는 우리가 걸음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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