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 후에 보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열두 지파(ιβχ천 ρμδχ 천)가 인 맞은 후에 보니,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구원하심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열두 지파 중에서 ‘단’지파가 빠지고 요셉의 아들 므낫세가 한 지파를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요셉은 아들과 함께 두 지파를 차지한 셈이다.
성경 근거로 찾아보면 “이스라엘(야곱)의 장자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삼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는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느니라”(대상5:1-2)가 그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호적상 장자보다는 세상 모든 이에게 장자로서 드러내기에 합당한 요셉이 아들과 함께 두 몫의 받는 게 맞다고 보신 것이다.
단 지파가 계시록의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외된 것은, 야곱이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창49:16-17)라고 예언한 것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이때 단 지파가 혈통적 단 지파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영적 단 지파가 되는 것, 즉 자기 주변사람을 심판하고 길의 뱀이 되며 지름길의 독사 노릇을 하는 것은 이 땅에 살면서 뭇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름다운 아들이 되도록 재촉하는 채찍과 담금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품지 못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일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다
구원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삶의 어떤 정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그 사랑의 심정을 놓치는 순간 없이 마음의 평안과 사랑의 충만한 상태를 가리킨다는 정도로 말할 수 있을까.
구원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있다는 것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마5:34)라고 하셨도,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때로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9) 고도 하셨다.
즉 사람이란 하나님이 거하실 육체 성전이면 당신의 집이 되고,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로서 그 육체를 통한 삶의 모습이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같은 열매(행위)로 수확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당신의 밭이 된다. 마찬가지로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좌정하실 보좌를 자기 마음에 준비해둔 사람은 그 존재 자체가 당신의 보좌가 되는 것이다.
사람의 하나님과 세상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신 어린양 그리스도의 사람의 음성이 그 사람, 그 보좌에서 끝없이 울려나오는 마음의 상태를 구원이라 한다.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서 비롯되는 구원, 이것을 두고 예수님은 “나는 그의 명령(εντολη엔토레;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요12:50)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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