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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이야기

하나님의 원하심 (마9) - 정광교회 박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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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원하심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9:13)

 

종교를 갖기 시작한 후부터 사람들은 모시는 대상에게 예배를 바치고 제물을 드리며 종교적으로 헌신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유대인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유대인 당신들이 드리는 종교적 헌신을 하나님 자신이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다만 그 종교적 헌신을 세상의 이웃들에게 행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 "너희는(성경 속의 유대인, 지금 현 시대의 뭇 종교인) 내가(하나님과 하나인 예수, 즉 하나님을 가리킨다)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하신다.

제사
제사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형식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긍휼이다. 제사를 통해 긍휼을 배우지 못하면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다. 제사에 자신이 제물로 바쳐져야 하는 것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숫소나 양, 염소로 대신하는 것뿐이다.(레22:26~ 29 참고) 제물의 실제적 존재는 짐승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하느님 앞에서 나를 죽이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죽지 않으면 나를 드릴 수 없다. 하나님 앞에 나를 드린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그분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이 되었을 때에만 가능하다.

내가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었다는 것은 나 아닌 타인에 대해 긍휼의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된, 곧 긍휼을 가진 자가 되는 것을 다른 말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미리 죽어버린 것으로 여긴다면) 찾으리라"(마16:25)고 표현할 수 있다. '제 목숨을 잃으면'이라는 말은 육적인 세상것을 추구하는 삶을 포기해 버린 자라야 진정한 삶의 가치를 얻는다는 뜻이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0~18)고 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외적인 종교 형식인 제사가 아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바처럼 하나님은 짐승을 바치는 형식이 아니라 제사를 통해 당신의 뜻을 받아들여 변론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과의 변론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제사의 목적이다. 하나님의 변론을 듣고 이를 믿고 그 믿음대로 살게 될 때 붉은 죄가 눈처럼 희어지게 된다고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 말씀하고 계신다.

죄인을 부르심
여기서 죄인은 스스로 부족함을 인식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그 부족함을 채워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을 예수를 통해 부르신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만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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