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태이야기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 (마12) - 정광교회 박승현

728x90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

 

"그 때에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마12:22)

 

성경을 볼 때는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들어야지 거기서 내가 원하는 것만을 듣고 보아서는 안 된다. 성경은 어쩔 수 없이 세상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하늘나라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눈멀고 벙어리 된 자의 이야기가 써 있는 성경의 첫머리에 분명히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가 되었다고 써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글자 그대로 육체적으로 눈멀고 벙어리가 된 것으로 믿는다.

이는 진리의 경전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려는 순박함에서 빚어지는 일이 아니다. 악하고 음란한 마음의 탐심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기적보다 보이는 기적을 믿고 싶고 추구하고 싶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악하고 음한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다"(마16:1)고 하셨다.

어떤 사람들이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인가
성경은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는 표면적 이스라엘 사람(롬11:25 기독교인, 유대교인, 종교인)을 소경이라 한다. 또 자기는 돌아보지 않고 종교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면서도(마15:1-6)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인도하는 스승이라 자칭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을 향해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15:14).
성경에서 말하는 소경은 눈으로 무엇을 볼 수 없는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벙어리도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의 기준을 자기에게 맞추고 자기 것만 옳다고 우기는 사람이 소경이다. 소경은 영적인 무지가 낳은 교만으로 오만과 편견에 빠져 있는 자들이며, 어디를 향하는지 모른 채 그저 애쓰기만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종교는 육체를 통해 살아가는 삶의 여행길에 정말 좋은 친구다. 그러나 종교가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눈먼 종교가 될 수도 있다. 삶의 여행길에는 보이는 목적과 보이지 않는 목적이 있다. 보이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떤 목표나 지점에 도달해서 현재는 없는 것을 얻으려 애쓰는 수고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목적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거기까지 가는 과정은 무시하고 끝내 얻는 것만 중시하면 '보이지 않는' 목적을 놓치게 된다.

보이지 않는 목적은, 우리가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얼마나 많은 일들을 성취하는지와 관계가 없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간에 지금 이 순간 그것들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보이는 목적은 제한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안에서 달성해야 한다는 조급함, 결과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수평적 차원에 속해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목적은 영원영생의 시간관념이 사라진 세계 속에서 높이 올라가고 깊이 들어가는 수직적 차원에 속해 있다.

 보이는 목적을 성취하려는 여행에는 수많은 전리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전리품에 대한 세상의 격려가 있어 부와 명예, 권세를 얻어 그것을 성공이라 여긴다. 여행의 고단함과 수고로움을 그것들과 쉽게 맞바꿔 버린다. 그러나 이것은 '천하를 얻고도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에 반해 보이지 않는 목적을 위한 여행에는 전리품이 쌓일 수는 있어도 그것들은 단지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여행의 목적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목적을 향한 한 걸음 한 걸음이 곧 과정이고 목적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신의 성품이자 성령이신 그리스도를 자기 안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을 바울은 "우리의 돌아보는(관심 갖는 것)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8) 했다. 즉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고 자기 것만 옳다고 하는 자가 귀신들려 소경되고 벙어리 된 자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