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가라사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묻자와 가로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마17:9-13)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신앙의 산에 오르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어렵다고 오르지 않거나 또한 내려오지 않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잘못 생각하여 '어차피 내려올 텐데' 하면서 오르는 것 자체를 허무한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신앙의 산에 오르는 목적은 다 오른 다음 산을 뒤로 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는 데 있다.
산에 오르는 것만이 목적인 사람은 정상에 우뚝 선 다음에 저 아래 멀리서 세상의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두고 판단하거나 우월적 긍휼을 느끼면서 혀를 찰 수도 있다. 성경에서 산에 오른다는 것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신(神)의 영역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에 가까이 이르지 못했을 때에는 그것이 목적일 수 있고 목적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신에 이르게 된 자는 추구하는 바를 더 멀리 그 너머로 물려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원하시는 것은 신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세상 속에서 이웃들과 부딪히면서 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의 소금이 되어 맛을 더하고, 세상의 빛이 되어 어둠을 씻어내야 한다. 백혈구 같은 존재가 되어 세균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 세균 스스로 백혈구 안에서 백혈구와 함께 녹아내리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그렇게 사셨고,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삶과 말씀을 인용하여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3-8)고 했다.
세상에서 나 혼자 고귀한 것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홀로 있을 때 고고한 여유로움을 갖는 것은 좋다. 그러나 세상 가운데 있을 때에는 고고함보다는 담박(淡泊 :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한 옷을 입고 병들어 썩어가는 이웃의 영혼을 치료하는 의사, 삿되고 더러운 것을 치워주는 청소부의 삶을 사는 것이 낫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고귀한 자임을 세상에 밝히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하나님 앞에 고귀한 자라도 세상에서 사역을 마치기까지는 고귀하게 품위만 지킬 수 없다.
예수님은 세상에 영적 사랑의 싸움꾼으로 오셨다. 그분 안에서는 세상에 대한 미움도 원한도 없고 오히려 사랑이 넘쳐흘렀다. 그러나 예수님은 겉으로는 사랑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예수께서 세상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자들까지 불쌍히 여겨 사랑하시지만, 그 사랑하는 티를 겉으로 드러낸다면 어찌될까?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기보다 예수님의 힘을 빌려 세상 욕심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길 것이다.
예수는 싸움꾼이었다. 그는 거룩한 자, 겸손한 자이고 싸움에 대한 혈기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소망과 믿음, 사랑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은 세상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셨기에 자기의 거룩함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만약 세상이 예수님의 거룩함을 알았다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어설픈 신앙인들은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세계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제시받지 못한 채 그저 예수를 우상으로 꽁꽁 묶어놓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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